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417
영어공식명칭 Korea’s Famous Mountain, Palgongsan Mountain
이칭/별칭 팔공산자연공원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한국의 명산, 팔공산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지도보기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산.

[세계적인 명산]

대구광역시 동구·북구, 경상북도 경산시·영천시·군위군·칠곡군 등 6개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분포하는 팔공산은 대구광역시·경상북도의 자연적 및 인문적 동질성을 확보해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팔공산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자 신라 민애왕의 사리호[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傳 大邱 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蠟石舍利壺)]가 나왔다고 전해지는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이 있는 동화사를 비롯해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신라 선덕여왕의 추모제를 집전하는 숭모전이 있는 부인사, 고려 광종 임금이 머물면서 속병을 고친 도덕암, 조선 인종과 광해군의 태실, 영조의 원당이었던 파계사 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팔공산이 시대와 이념을 초월해 역대 왕들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명산임을 잘 보여준다. 팔공산이 불교 문화유적의 산실임은 물론 신라의 원효, 의상, 심지, 김유신, 고려의 지눌, 일연, 조선시대 성리학자 유방선, 김시습, 서거정, 이황, 이숙량, 서사원, 추사 김정희, 사명대사 유정 등과도 관련을 가지는 산으로 다양하고도 풍부한 스토리를 양산해낼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어 역사적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한편 거란의 침략을 불력으로 막기 위해 판각한 초조대장경을 봉안했던 부인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 지휘 아래 승군 총사령부가 동화사에 있었다. 또한 대구 지역 선비를 중심으로 팔공산에서 ‘공산회맹(公山會盟)’을 통해 대대적인 의병활동이 이루어진 일, 6·25전쟁 당시 가산 일대가 낙동강 최후 방어선 역할을 한 사실에서 팔공산은 호국의 산으로서도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팔공산은 맑은 빛을 띠는 거대한 화강암 산괴로 수려하고도 다양한 지형이 곳곳에 발달한다. 화강암 풍화토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동·식물은 총 4,741종으로 팔공산의 생태적 환경이 매우 건강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기묘하고도 흥미로운 지형과 관련하여 전해져 오는 이야깃거리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팔공산의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명산의 대열에 팔공산을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팔공산 지명 유래]

팔공산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문헌은 1497년 간행된 김종직의 시문인 『점필재집』이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팔공산중악(中岳), 부악(父岳), 공산(公山) 등으로 불려져 왔다. 중악의 기원은 『삼국사기』권 제32 ‘잡지(雜志)’의 ‘제사(祭祀)와 樂(악)’에 나타난다. 즉, 3산(山)·5악(岳) 이하 명산대천을 나누어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하였다. 이 가운데 중사는 5악으로 동악을 대성군의 토함산(吐含山), 남악을 청주(菁州)의 지리산(地理山), 서악을 웅천주(熊川州)의 계룡산(鷄龍山), 북악을 내사군(奈巳郡)의 태백산(太伯山), 중악을 동·서·남·북악의 중간에 위치하는 압독군(押督郡)의 공산(公山)으로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팔공산은 신라시대 이래 중악, 부악, 공산 등으로 불려져 오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팔공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팔공산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 8개 고을에 걸쳐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팔공산이 행정구역상으로 8개 지역에 걸쳐 분포한 적은 없었다. 둘째, 동화사 창건 당시 불골간자인 팔간자 설화와 관련된 설이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이념체계를 지향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불교와 관련된 팔간자의 ‘팔(八)’을 차용하여 공산팔공산으로 개칭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셋째,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팔공산공산전투에서 왕건이 크게 패하여 도주할 때, 왕건의 여덟 장수가 팔공산에서 순절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공산전투에서 왕건과 함께 전투를 하다 순절한 장수로는 신숭겸김락 장수 두 명이다. 그래서 고려 16대 왕 예종은 이 두 장수의 원혼을 달래주려 「도이장가」를 짓기도 했다. 넷째, 중국의 지명을 차용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는 중국의 지명을 차용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대부의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에 그러한 경향이 심했다. 383년 전진(前秦)과 동진(東晋) 간에 벌어진 비수전투의 격전지에는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아마도 당시 비수전투가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만큼이나 치열했던 것에서 팔공산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팔공산의 지명유래에 대한 설이 다양하게 전해 오고 있으나 가장 합리적인 유래설은 중국 안휘성(安徽省)의 팔공산 지명 차용설이라 생각된다. 팔공산 지명은 대구 외 전라북도[진안군과 장수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 1,151m]에도 한자어까지 동일한 팔공산이 존재한다. 즉 한자어까지 동일한 지명이 2개가 존재한다는 것은 특정 지명을 차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조선시대에 차용된 새로운 지명의 경우 대부분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팔공산의 자연·인문지리적 환경]

1. 자연지리적 환경

대구분지와 분지를 둘러싸는 팔공산지 그리고 비슬산지는 대구지역의 지형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대구지형을 구성하는 기반암은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대구분지를 구성하는 퇴적암이 가장 앞선 시기로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호수에 퇴적된 퇴적암이다. 다음으로 약 7,000만 년 전에 일어난 강력한 화산폭발로 대구[대구광역시]의 남쪽을 에워싸는 앞산과 비슬산 일부를 구성하는 화산암이다. 팔공산을 구성하는 화강암은 약 6,500만 년 전에 형성돼 시기적으로 가장 늦다.

한편, 앞산 일대의 화산폭발과 지하 마그마의 관입으로 팔공산과 비슬산의 화강암이 형성될 당시, 주변의 퇴적암은 높은 열과 압력으로 인해 변성퇴적암이 되었다. 이러한 변성퇴적암은 앞산과 비슬산 그리고 팔공산 일대에 부분적으로 분포한다.

팔공산지 남서쪽 화강암 지대와 접촉변성암지대 사이는 단층선이 통과하고 있어 차별침식에 따른 소규모 분지가 대구 동구의 백안동, 미대동, 덕곡동[현지에서는 덕산동으로 부르고 있음]과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일대에 잘 발달되어 있다. 산악인들에게 가·팔·환·초[가산-팔공산 천왕봉(비로봉)-환성산-초례봉]로 알려진 팔공산 주 능선은 팔공산을 찾는 산악인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등산코스다.

팔공산의 주 능선은 가산바위-가산-한티재-파계재-마당재-톱날바위-서봉[삼성봉]-천왕봉-동봉-병풍바위-도마재-느패재-관봉-환성산-초례봉에 이르는 구간으로 주요 지형 경관이 주 능선을 따라 발달한다. 주 능선에서 관찰되는 대표적인 경관은 탑 모양의 바위인 토르(tor), 절벽 바위[암봉], 가마솥 모양의 바위인 나마(gnanmma) 등이며, 변성퇴적암인 가산바위를 제외하면 모두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주 능선을 경계로 남서부 지역에는 산정상부가 평탄한 고위평탄면을 비롯해 암괴류[돌강], 토르, 나마, 풍화동굴, 판상절리지형, 폭포 등이 발달한다. 팔공산의 대표적인 고위평탄면인 가산에는 지형의 특성을 이용하여 산성을 축조하였고, 가산의 암괴류는 천연기념물 제435호인 비슬산 암괴류에 버금간다. 주 능선을 경계로 남서부 지역에 비해 북동부 지역에는 하천지형이 상대적으로 잘 발달한다. 계곡의 경우, 동산계곡, 치산계곡 등은 남서부의 계곡에 비해 규모도 크고 깊다. 아마도 지역 간 국지적인 지형 및 기상 차이가 계곡 발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팔공산의 기묘한 산세를 이루어 놓은 계류는 남천과 남천으로 합류하는 사창천, 위천으로 합류하는 구천, 신녕천, 청통천, 조산천, 숙천, 율하천, 불로천, 동화천, 팔거천 등이 있다. 특히 동화천의 수계로는 폭포골, 수수돌, 빈대골로 구성되는 계류를 비롯해 염소골, 수태골[바위골, 주추방골, 성지골로 구성]로 구성되는 용수천, 지묘천 등으로 구성된다.

2. 인문지리적 환경

팔공산의 범위에 대해서는 편의상 행정적 범위, 자연 지리적 범위, 문화적 범위로 구분할 수 있다. 행정적 범위는 대구광역시에서 관리하는 팔공산자연공원과 경북에서 관리하는 팔공산도립공원으로 구분된다[면적: 126.852㎢, 3,844만 평). 경북 관할면적이 91.487㎢로 팔공산 면적의 72%, 대구 관할면적이 35.365㎢로, 팔공산 면적의 28%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연지리적 범위에 해당하는 면적은 좁은 의미의 개념과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화강암으로 구성된 팔공산 산체로 볼 수 있고 후자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팔공산 산체에 주변의 환상산맥을 포함하는 경우까지로 볼 수 있다. 지형도와 지질도를 참고하여 팔공산의 면적을 측정해 본 결과, 화강암으로만 이루어진 팔공산 화강암체 면적은 209.35㎢였고, 접촉변성대인 환상산맥을 포함한 면적은 232.6㎢로 나타나 행정적 범위의 팔공산 면적 126.852㎢보다는 훨씬 넓게 나타난다. 또한 팔공산의 범위에는 지역주민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어 온 문화적인 관점에서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팔공산 지역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팔공산이 소속된 대구지역과 경상북도의 4개 시·군[경산시,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의 초·중등학교 교가 속에 등장하는 자연지명을 분석해 보았다. 특히 교가에 등장하는 자연지명 중 팔공산 지명의 등장 빈도는 팔공산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분석결과 팔공산의 문화적 범위에는 대구광역시의 경우에는 달성군을 제외한 전 지역이, 경상북도는 경산시, 영천시, 군위군 전 지역과 칠곡군은 팔공산과 인접하고 있는 동명면과 가산면 일대가 해당된다.

[유·불·선과 가톨릭이 조화를 이루는 팔공산]

팔공산의 다양한 문화적 자원 중에서도 종교적 문화의 다양성은 팔공산을 대표하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팔공산은 통일신라시대 중악으로서 왕이 천신께 제사를 지내온 이래 도교적 색채가 곳곳에 배어있다. 천왕봉 서편에 위치하는 마애약사여래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의 경우 우리나라 불상 중 연화대좌 아래에 유일하게 쌍룡[청룡과 황룡]이 조각돼 있어 특이하다. 이것은 불교가 이 땅에 자리 잡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리의 토속 신앙적 색채가 혼합돼 나타나는 불상으로 팔공산이 토속신앙지로서도 중요했음을 잘 알 수 있다. 김유신 장군 설화의 배경이 되는 명마산의 용왕당을 비롯하여 기생바위와 천왕나무[소나무], 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내릿골의 당산, 동화사 부도암 주변 기자석(祈子石) 등지에는 지금도 좋은 날을 택해 무속인은 물론 일반인도 찾아와 복을 빌기도 한다. 또한 마을의 당제와 동제의 존재는 팔공산 일대의 토속신앙이 여전히 전승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당제와 동제는 토속신앙의 요소에 불교적, 유교적, 도교적 의례가 혼합된 방식을 보이며 나무[느티나무, 소나무, 팽나무], 돌탑, 돌무더기, 솟대, 선돌 등을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특히 팔공산 능선부에 위치하는 명품의 경관 노적봉과 동화사 봉황문 부근 폭포골 하류 계곡일대는 기복신앙지로 이름나 있다.

팔공산에서 토속신앙과 도교에 뒤이어 나타나는 종교 문화적 색채는 불교 문화이다. 신라의 불국토라 불릴 정도로 불교 문화재가 많은 팔공산은 신라시대 이래 역대의 여러 왕과 불교적 인연을 가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팔공산 골골마다 산재하는 다양하고도 품격 있는 불교적 유적과 유물은 팔공산을 보다 팔공산답게 해준다. 국보 2점, 보물 12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이 그 빛을 더해주는 팔공산에는 남사면의 동화사, 북사면의 은해사 등 조계종 본사가 2곳이나 소재하고 있어 현재도 불교적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로 유명세를 더하는 갓바위[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의 존재는 팔공산이 왜 불교의 성지인가를 잘 알게 해준다. 신라시대 이래 융성하게 발전해 오던 불교문화는 유교적 사상이 국가의 이념으로 설정되었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침체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국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적 토양은 황폐해지는 반면 유교적 사상과 문화적 토양은 빛을 발하게 된다. 팔공산 또한 이러한 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팔공산의 유교적 문화색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구광역시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을 비롯해 경상북도 군위군의 양산서원,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농연서당,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의 귀천서원, 유학자의 학문적 소양과 심성을 닦고 배양시킬 목적으로 설정한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용수천의 농연구곡과 동화천의 문암구곡의 존재는 팔공산의 유학적 사상과 이념을 풍성하게 해 준다. 특히 명유들의 팔공산 산행기나 유람기는 팔공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유려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어 팔공산의 멋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한편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양란으로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의 유림들은 팔공산 공산성에 모여 공산회맹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는 데 있어 솔선수범해 나가는 선비적 자세를 실천해 나간 곳도 팔공산이다. 또한 팔공산 남·북사면에는 유림의 전통마을이 대도시의 개발 압력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존재한다. 남사면의 경주최씨 전통마을인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옻골마을과 북사면의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의 한밤마을이 그것이다. 본 전통마을은 돌담길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기도 한다.지금까지 팔공산의 토속신앙으로부터 시작하여 도교, 불교, 유교를 거쳐 오는 동안 팔공산은 종교적으로도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 유·불·선과 확연히 다른 종교 문화적 색채인 가톨릭이 서구로부터 유입되어 오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교적 이념이 강했던 경북에서는 1800년대 유교적 이념과 대립되던 가톨릭 종교의 보급으로 인해 가톨릭이 배척당하던 시기로서 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다. 특히 팔공산 한티에 위치하는 한티 가톨릭 성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지다. 이처럼 팔공산에는 우리의 토속신앙을 비롯해 유·불·선 그리고 가톨릭이 공존하면서도 조화로움을 추구해나가는 특이한 장소성을 보이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곳이다. 21세기 혼돈의 시대에 각각 다른 종교적 이념을 가지는 다양한 종교가 한 지역에 온전히 둥지를 틀고 상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