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352
한자 道山祠記
영어공식명칭 Account of Dosans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95년 - 「도산사기」 허목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82년 - 「도산사기」허목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92년 - 「도산사기」 간행 추정
배경 지역 「도산사기」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지도보기
성격 기|사기
작가 허목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인 허목이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주변에 있었던 도산사에 대해 적은 기문.

[개설]

허목(許穆)[1595~1682]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찬성 허자(許磁), 할아버지는 별제 허강(許橿), 아버지는 현감 허교(許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허목은 사상적으로 이황·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킴으로써, 기호 남인의 선구이며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다.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다. 문집 『기언(記言)』과 역사서 『동사(東事)』 등을 편집하였다.

「도산사기(道山祠記)」에 등장하는 도산사(道山祠)는 고려 충신 신숭겸(申崇謙)김락(金樂)을 배향한 사당(祠堂)이다. 도산사의 위치는 왕건견훤에게 패한 동수(桐藪)[지금 동화사(桐華寺) 부근]라는 곳인데, 현재는 건물이 없다.

[구성]

「도산사기」 글의 서두에 도산사를 세우게 된 경위, 허목이 「도산사기」를 짓게 된 경위가 적혀있다. 이어서 도산사의 건립과 관계된 공산전투를 『고려사(高麗史)』를 통해 상고하고, 마지막으로 왕을 위해 절사(節死)한 신숭겸김락의 충절을 드러내고 있다.

[내용]

권대재(權大載)[1620~1689]가 달성도호부 판관(達城都護府判官)으로 부임해 지역 부로(父老)들에게 옛 풍속을 물어보다가 신숭겸의 고사를 알게 되었다. 권대재는 신숭겸이 선덕(善德)과 공렬(功烈)이 높기 때문에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여기고 마침내 도산(道山)에 사당을 세웠다. 이곳은 바로 옛날 동수(桐藪)라고 불리던 곳이다. 신숭겸의 후손인 영남절도사 신여철이 자금을 내어 공사를 도왔고, 사당이 준공되자 희생을 잡아 고사한 다음 길일에 향사를 지냈다. 권대재가 도산사가 준공할 당시 허목에게 기문을 적도록 했다. 그 이야기는 「도산사기」에 실려 있다. “내가[허목 자신] 옛일을 서술할 줄 안다고 여겨서 예사(禮祀)의 내력을 적되 충신의 공렬[드높고 큰 공적]을 함께 드러내어 기록하도록 하였다.”

『고려사』에 드러난 공산전투와 전투에 참여한 충신들의 열전(列傳)을 통해서 신숭겸김락이 지닌 충신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특징]

「도산사기」는 충효를 중시 여긴 조선 사회에서 공산전투에서 왕을 대신해 죽고, 나라를 위해 순절한 신숭겸김락의 이야기를 공산전투와 연관시켜 잘 표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도산사기」신숭겸김락을 배향하였던 도산사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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