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560
한자 李圭逸
영어공식명칭 Lee Gyuil
이칭/별칭 치유(致有),치봉거사(稚峯居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8년 9월 22일연표보기 - 이규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83년 8월연표보기 - 이규일 사망
묘소|단소 이규일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경주

[정의]

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묻힌 효자.

[가계]

이규일의 본관은 경주, 자는 치유(致有), 호는 치봉거사(稚峯居士)이다. 고려 말 문충공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상(李有祥), 아버지는 이의영(李義榮),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우용(尙佑容)의 딸이다. 부인은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정만수(鄭晩秀)의 딸이다. 아들 두 명을 두었는데 이종기(李鍾紀)와 이종택(李鍾宅)이다.

[활동 사항]

이규일은 1858년(철종 9) 9월 22일에 태어났다. 4세 때 아버지 이의영이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가 곡하는 것을 보고 문득 어머니를 끌어안고 소리내어 울다가 어머니가 그치면 따라 그쳤다. 장성해서는 아버지 이의영의 기일이 되면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내 일찍이 섬기지 못한 슬픔을 달랬다. 어머니를 봉양할 때는 지극정성으로 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우와 우애가 무척 깊었고, 또 가산[집안 재산]을 많이 베풀어 곤궁한 친족을 도왔다.

한편, 대구 남쪽 치산(稚山) 아래 살면서 ‘치봉거사(稚峯居士)’로 자호한 뒤에 책을 읽고 뜻을 구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그러나 26세 때 병을 얻은 뒤에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불초한 자식을 염두에 두지 말라.”고 부탁하고, 1883년(고종 20)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이규일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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