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544
한자 崔東𡸽
영어공식명칭 Choe Dongjik
이칭/별칭 향암(香巖),진숙(鎭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2년 6월 17일연표보기 - 최동직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65년 4월 11일연표보기 - 최동직 사망
출생지 최동직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최동직 거주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묘소|단소 최동직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진사

[정의]

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출신 유학자.

[가계]

최동직의 자는 진숙(鎭叔), 호는 향암(香巖),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만경현령 증 병조참판 최계(崔誡)이고 어머니는 순창설씨(淳昌薛氏)이다. 두 형은 진사 최동률(崔東律), 사부(師傅) 최동집(崔東㠍)이다.

[활동 사항]

최동직은 부친 최계 밑에서 공부했는데 부지런히 공부하여 문명(文名)이 있었다. 1622년(광해군 14)에 최계와 함께 한양[지금 서울특별시]에 있을 때 두 형 최동률최동집이 고향인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었으므로 홀로 최계를 봉양했다. 최계가 병환이 났을 때 시탕(侍湯)하며 써보지 않은 약이 없었다. 최계가 사망했을 때 고향으로 운구한 것도 최동직이다. 최동직은 부모님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근학(勤學)과 입신양명에 있다고 하고 더욱 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1639년(인조 1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는데, 탄식하여 말하기를 “부모가 없는 자가 진사면 족하다 어찌 영달을 구하리오” 라고 하고 과거를 포기하고 향암(香巖) 아래 집을 짓고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하였다. 모당 손처눌 선생의 문인이다.

[묘소]

최동직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속칭: 대명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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