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459
한자 大邱鳳舞洞遺蹟
영어공식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Bongmu-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360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4월~2004년 7월 - 대구 봉무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12월~2008년 1월 - 대구 봉무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11월~2007년 7월 - 대구 봉무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8월~2009년 9월 - 대구 봉무동 유적,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0월~2010년 1월 - 대구 봉무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봉무동 유적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360 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 봉무동 유적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360
성격 복합유적
양식 주거지|건물지|취락|고분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규모 취락.

[위치]

대구 봉무동 유적은 금호강이 크게 휘어 북쪽으로 흘러가는 지점 동편 ‘봉무들’ 일대에 있다. 동쪽으로 접한 능선에는 봉무동 고분군, 북편으로는 봉무토성이 분포하고 있다.

[형태]

대구 봉무동 유적은 봉무지방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5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알려진 유적이다. 발굴 조사 현황은 다음과 같다.

2003년 4월 7일부터 2004년 7월 29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공사구간 내에서는 삼국시대 도로 3기, 우물 3기, 구멍[수혈] 9기, 구 2기, 고상건물지 3기, 습지 1개소, 기둥구멍[주혈] 212개[고상건물지 포함]와 조선시대 도로 1기, 석축 1기 등 모두 23기의 유구[집자리, 무덤 등 옛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와 주혈 212개가 조사되었다.

2004년 12월 20일부터 2008년 1월 16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봉무지방산업단지 1단계 조성 부지 내에는 청동기시대 구상유구 1기, 삼국시대의 수혈 32기, 구상유구 11기, 고상식건물지 10동, 도로유구 1기, 수레바퀴흔 3곳, 목탄요 2기, 소성유구 1기, 습지, 조선시대의 수혈 2기, 구상유구 2기, 도로유구 1기 등이 조사되었다.

2006년 11월 1일부터 2007년 7월 5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봉무지방산업단지 외국인학교부지 내에서는 고려~근대 수혈 3기, 구상유구 2기, 도로 2기, 수레바퀴흔 5곳, 기와가마 2기, 널무덤 3기, 배수로 3기, 자연구 4곳 등이 조사되었다.

2008년 8월 6일부터 2009년 9월 4일까지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봉무지방산업단지 2단계 조성사업부지 내에서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8기, 주혈군 12기, 삼국시대 구상유구 9기, 통일신라시대 이후 도로 4기, 수레바퀴흔 7곳, 삼가마 8기, 수혈 52기, 주혈 및 주혈군 43기, 경작유구 9기 등이 조사되었다.

2008년 10월 27일부터 2010년 1월 8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봉무지방산업단지 2단계 조성사업부지 내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7기, 굴립주건물지[땅을 파서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서 만든 건물, 바닥면이 지면보다 높음] 1기, 수혈 4기,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17기, 굴립주건물지 14기, 수혈 9기, 구상유구 3기, 삼국시대의 주거지 20기, 굴립주건물지 50기, 수혈 37기, 구상유구 7기,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 2기, 건물지 1기, 적심건물지 1기, 굴립주건물지 2기, 도로 2기, 우물 2기, 수혈 27기, 습지 2개소, 고려~조선시대의 수혈 6기, 삼가마 1기, 우물 1기, 경작유구 1개소, 시대미상의 수혈 15기, 적심건물지 1기, 구상유구 3기, 우물 4기, 삼가마 9기, 주혈군 등이 조사되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대구 봉무동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생활·생산유구가 중복되어 조성된 복합유적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유구 내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합인석부[조갯날도끼]·지석, 원삼국시대의 주머니호·완·쇠뿔잡이항아리[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목짧은항아리[단경호]·장동옹·첨저옹·시루·내박자·거푸집조각·주조철부·가락바퀴·지석, 삼국시대의 굽다리접시[고배]·단경호·굽다리목긴항아리[대부장경호]·시루·질그릇[파수부호]·대호·방추차·토구·기와류, 통일신라시대의 고배·단경호·대부완·병·도장무늬토기[인화문토기]·원판형토제품·암수기와·청동합·두레박·철제솥, 고려~조선시대의 토기·청자·분청자·백자·암수기와·도침·어망추·보습 등의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봉무동 유적은 현재 봉무지방산업단지의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 후 개발이 이루어졌다. 대구 봉무동 유적은 발굴 조사 현황을 통해 볼 때 남쪽 경부고속도로 건너편의 불로동으로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대구 봉무동 유적은 남쪽 경부고속도로 건너편 불로동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은데, 금호강 배후 넓은 충적지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던 삼국시대 해안현(解顔縣)의 중심취락으로 보인다. 대구 봉무동 유적과 인접한 능선에 자리한 대구 불로동 고분군봉무동 고분군과 연관된 취락으로 앞으로 삼국시대 취락과 고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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