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423
한자 大邱桐華寺毘盧庵三層石塔
영어공식명칭 Three-story Stone Pagoda at Biroam Hermitage of Donghwasa Temple, Daegu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863년연표보기 -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817년 - 신라 민애왕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839년 - 신라 민애왕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보물 제24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성격 석탑
양식 삼층 석탑
관련 인물 신라 민애왕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3.71m
소유자 동화사
관리자 동화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 비로암 대적광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삼층 석탑.

[개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은 863년 민애왕[재위 838~839]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적혀 있는 납석사리호[보물 제741호]가 출토되었다. 동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493년(신라 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832년(흥덕왕 7)에 왕사(王師) 심지(心地)에 의해 중창되었는데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桐華寺)라 고쳐 불렀다고 전하는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5세기는 아직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며, 사찰 내 5세기대 유구 및 유물이 전혀 확인된 바 없어 신빙성에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권4 「심지계조조(心地繼祖條)」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었던 심지가 갖은 고행 끝에 속리산의 영심(永深)이 율사 진표(眞表)로부터 받은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수받아 팔공산으로 들어온 후 불골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다 절을 짓고 동화사라 했다는 기록과 경내에 남아있는 석조물의 조성시기, 같은 시기 신라사회에 유행한 사찰 확산 경향 등을 근거로 832년(흥덕왕 7)에 왕사(王師) 심지(心地)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높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934년(태조 17) 선사 영조(靈照), 1190년(명종 20)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298년(충렬왕 24) 국사 홍진(弘眞)이 각각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606년(선조 39) 유정(惟政), 1677년(숙종 3) 상숭(尙崇), 1732년(영조 8) 관허(冠虛)·운구(雲丘)·낙빈(洛濱)·청월(晴月) 등이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립 경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납석사리호[보물 제741호]에 863년 민애왕[재위 838~839]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적혀 있다.

[위치]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팔공산 중턱에 있는 동화사 서쪽 언덕에 자리 잡은 비로암의 대적광전 앞뜰에 있다.

[형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은 흙을 다져 만든 토단(土壇) 위에 2중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몸돌[塔身石]과 지붕돌[옥개석(屋蓋石)]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하층기단의 지대석은 4장의 길고 큰 돌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우주(隅柱)]과 받침기둥[탱주(撐柱)]이 새겨져 있으며, 갑석(甲石)은 네모난 4장의 판석을 붙였다. 상층기단의 면석은 4장의 판석으로 만들었는데, 각 면마다 우주와 탱주를 돋을새김하였으며, 갑석은 2장의 판석을 덮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겼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遞減)되어 있다. 지붕돌은 윗면 가운데 부분에 굄을 새겼고, 추녀는 전각(轉角)까지 직선을 이루며, 아랫면에는 4단의 받침을 새겼고 가장자리에는 가는 홈을 파서 돌렸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가 차례로 올려져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각 부분의 특징은 신라 하대에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금석문]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납석사리호[보물 제741호]의 몸체 외면에 가로와 세로로 칸을 구획하고 7자 38행의 글자를 음각하여, 사리구의 제작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일부가 도굴시 훼손되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명문내용을 통해 사리호는 신라 민애왕[재위 838~839]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석탑과 연관이 있고 조성시기가 경문왕 때인 863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황]

1966년 사리구(舍利具)가 도난당한 바 있었으나 석탑의 건립 내용을 알 수 있는 납석사리호, 금동합(金銅盒) 밑바닥, 목조 금박(木造金箔)의 작은 탑 3기, 홍색 견포(絹布)가 수습되었다. 1967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상층기단 일부와 탑신부에 이상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해체복원 공사를 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은 건립연대가 밝혀져 있어 동시기 석탑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석탑 내부에서 출토된 납석사리호는 조성 연유에 대한 자세한 명문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 하대 왕실 문화와 불교 공예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4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 보호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