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360
한자 大邱孝睦洞朝陽會館
영어공식명칭 Joyang Assembly Hall in Hyomok-dong, Daegu
이칭/별칭 조양회관,효목동 조양회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효동로2길 94[효목동 121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83년 -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중구 달성공원 입구에서 동구 망우당공원 내로 이전·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2월 28일연표보기 -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국가등록문화재 제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재지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 대구광역시 동구 효동로2길 94[효목동 1214]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 대구광역시 동구 대신동 지도보기
성격 교육회관
양식 붉은 벽돌 2층 건물
소유자 대구광역시
관리자 대구광역시 동구청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교육회관.

[개설]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서상일(徐相日)[1887~1962]이 주도해 대구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뜻을 모아 만들었다. 대구구락부회원들이 건축비를 부담하고, 서상일이 약 1,652㎡[500평]의 땅을 제공하였다. 서상일은 중국 만주 지역 등에서 활동하다 대구로 돌아와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던 독립운동가였다. 서상일은 대구지역 청년에게 민족계몽운동을 확산시킬 목적으로 달성공원 앞에 서양식 교육회관 형태로 조양회관을 세웠다.

조양회관은 “아침 해가 비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준공 후 일제강점기 대구구락부, 대구여자청년회, 대구운동협회, 농촌봉사단체 등이 조양회관에 입주해, 대구광역시 및 경상도 지역 민족 계몽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하였다.

[위치]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은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망우당공원 내에 있다.

[변천]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은 1922년 건립 당시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달성공원 앞에 세워졌다. 1983년 현재 위치인 대구광역시 동구 망우당공원 내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1987년부터는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은 광복회 회관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 2월 28일 국가등록문화재 제4호로 지정될 당시 이름은 ‘효목동 조양회관(孝睦洞 朝陽會館)’이었다. 2013년 10월 30일 지역명을 추가해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大邱 孝睦洞 朝陽會館)’으로 국가등록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건물은 1동으로 서양식 벽돌 건물이다. 건물을 포함한 연면적은 837.1㎡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을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ㅗ’자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전면은 좌우 대칭형으로 정면 좌우 양 끝의 계단실 부분이 약하게 돌출되었고, 뒷면 중앙부는 뒤로 돌출한 형태이다. 정면 중앙에는 약간 돌출된 현관이 나 있다. 4개의 사각 돌기둥을 세워 평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돌기둥의 머리에는 주두(柱頭)를 간략히 표현하고, 기둥 사이에는 반원형 아치를 장식하였다. 건물의 외벽은 화강석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았다. 창문은 오르내리기 창을 시설하였다. 모든 창문의 화강석 다듬은 인방석(引枋石)을 설치하였다.

[현황]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은 1987년부터 광복회 회관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은 근대시기 대구광역시의 대표적 언론인 서상일과 대구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독립 정신 및 계몽사상이 담긴 교육회관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적 애환이 담긴 건물로 그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