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정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문인 학자. 곽주남의 본관은 포산(苞山), 자는 맹견(孟堅), 호는 겸재(謙齋)이다. 고려 시대 금오위 교위(金吾衛校尉)를 지낸 곽자의(郭子儀)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곽두응(郭斗應), 할아버지는 곽중조(郭重祖), 아버지는 곽원택(郭元澤),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로, 도필성(都必成)의 딸이다. 부인은 광주이씨(光州李氏)이다. 2남 1...
-
1739년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신무동, 용수동 일대에서 백불암 최흥원이 실시한 동약. 북송의 남전여씨(藍田呂氏)에 의해 창안된 향약은 남송대 주자의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성리학적 향촌사회의 운영원리로 『소학』교육과 함께 각광받게 되었다. 여말선초 성리학의 수용과 함께 유입된 주자향약은 1515년(중종 10)을 전후하여 사림 세력에 의해 실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는가 하면,...
-
조선 후기의 학자 최흥벽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집안 형님인 최흥원을 위해 지은 언행 총록.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약(藍田鄕約)」에 의거해 「부인동규...
-
조선 후기 학자 최흥벽이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거처한 채선길·채선견형제의 문집에 부친 서문. 최흥벽(崔興璧)[1739~1812]은 조선 후기 때 학자로 자는 사교(士敎), 호는 두와(蠹窩), 본관은 경주이다. 최흥벽은 최흥원(崔興遠)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이광정(李光靖)과 정종로(鄭宗魯) 등과 교유하였다. 「소성련방집서」는 최흥벽의 문집인 『두와집(蠹窩集)』 권칠에 수...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학자. 최흥벽(崔興璧)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학(興學), 자는 사교(士敎), 호는 두와(蠹窩), 별호는 국옹(菊翁)이다. 최흥벽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으로, 봉사(奉事) 최동준(崔東峻)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경원(崔慶源)이고, 할아버지는 최수강(...
-
조선 후기 실학자인 안정복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백불암 최흥원을 위해 지은 묘지명.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庵)·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이다.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실학자로서 특히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지어 종래 잘못된 역사·지리학을 비판하였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
-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광정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살았던 백불암 최흥원의 행장.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휴문(休文),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동생으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에게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부친이 의병을 일으키자, 15세 나이로 종군하였다. 이황의 학문을...
-
조선 후기 학자인 최흥원이 평소에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서 문인과 제자들과 강설한 내용을 집안 족제인 최흥벽이 모아 편집한 글.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