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계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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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은거하고 있던 최흥원을 방문하여 함께 팔공산을 유람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 유록.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739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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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최흥원이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용수동·신무동 일대에서 실시한 동규의 절목.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약(藍田鄕約)」에 의거해 「부인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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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최흥벽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집안 형님인 최흥원을 위해 지은 언행 총록.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약(藍田鄕約)」에 의거해 「부인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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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유도원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살았던 최흥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유도원柳道源)[1721~1791]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숙문(叔文), 호는 노애(蘆厓)이다. 유도원은 네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더 이상 과거 시험을 보지 않았다. 대신, 존심(存心)·함양(涵養)의 실천적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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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에 은거하고 있던 최흥원에게 부친 서간문.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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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 ‘백불암’은 최흥원[1705-1786]의 호이다.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교관(敎官)이 되었고, 1782년 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784년 세자익위사좌익찬(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평생을 거의 대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그의 학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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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최흥원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의 평천사에 배향된 최계의 묘갈문. 최흥원(崔興遠)[1705~178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 또는 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어려서부터 침식(寢食)을 잊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대대로 달성의 칠계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백성들의 살기 어려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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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최흥원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입향조인 최동집의 어머니인 숙부인 순창설씨의 묘갈문.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약(藍田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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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정종로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백불암 최흥원을 위해 지은 묘갈명. 정종로(鄭宗魯)[1738~1816]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입재(立齋)·무적옹(無適翁)이다. 대제학 정경세(鄭經世)의 6대손이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이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정종로는 성리학에 정통하였는데, 이기론(理氣論)에서는 주리(主理), 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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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인 안정복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백불암 최흥원을 위해 지은 묘지명.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庵)·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이다.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실학자로서 특히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지어 종래 잘못된 역사·지리학을 비판하였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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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최흥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89년 건립된 정려각. 최흥원정려각은 1789년(정조 13년) 최흥원 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최흥원정려각 홍패에는 ‘효자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 경연참찬관 행어모장군 세자익위사익찬 최흥원지려’라고 적혀 있다. 최흥원[1705~1786]의 호는 백불암이다.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장릉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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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광정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살았던 백불암 최흥원의 행장.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휴문(休文),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동생으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에게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부친이 의병을 일으키자, 15세 나이로 종군하였다. 이황의 학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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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최흥원이 평소에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서 문인과 제자들과 강설한 내용을 집안 족제인 최흥벽이 모아 편집한 글.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