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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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 출신 문관. 남석로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백휘(伯輝), 호는 예연(禮淵)이다. 아버지는 남명신(南命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수천(李壽天)의 딸이다. 배우자는 일직손씨(一直孫氏)로, 손경림(孫慶臨)의 딸이다.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남운기(南雲紀)이고, 장녀는 최경회(崔景晦)에게, 차녀는 서상복(徐相復)에게 시집갔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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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1932년 건립된 일직손씨 문중의 재실. 대구 도동 추보재는 일직손씨 도동 입향조인 손홍주(孫弘冑)[1637~1716]를 추모하는 재실이자, 문중 선영 수호 재실이다. 손홍주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자 조선 중·후기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모당 손처눌의 손자이다. 대구지역 일직손씨 문중은 처음에는 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과 황금동에 살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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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와 그들의 집성촌.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해안현(解顔縣)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조에 따르면 해안현에는 모(牟), 백(白), 하(河), 신(申), 정(丁), 제(諸), 진(秦), 박(朴)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내성(來姓)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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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유교와 유학자, 대표적인 유적.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교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중년에 팔공산 자락에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거한 것은 그의 외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전인 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역임한 정수충(鄭守忠)이 있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한양에 기거하였으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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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송나라의 난세를 피해 우리나라에 귀화한 손응을 시조로 하고, 손홍주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세거한 성씨. 일직손씨 중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대표적 인물로는 손처눌이 있다. 일직손씨(一直孫氏)는 안동손씨(安東孫氏)로 불리기도 한다. 시조는 손응(孫凝)으로, 중국 송나라 2대 위(魏)왕, 3대 기(冀)왕 때 황제 등극을 두고 내란이 일어나자 왕족 및 귀족 세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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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 학자. 채범곤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언(箕彦), 호는 미은(渼隱)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5대조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인 양전헌(兩傳軒) 채선견(蔡先見)이며, 할아버지는 채윤복(蔡允復), 아버지는 채영국(蔡榮國),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로, 최진구(崔鎭九)의 딸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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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상진(崔尙鎭)[1729~1755]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이안(以安), 호는 정와(靜窩)이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마음가짐이 바르며 뜻 세움이 돈독하였다. 최상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광양현감(光陽縣監)을 지낸 최수학(崔壽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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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주진(崔周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공보(公普), 호는 동계(東溪)이다. 최주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수학(崔壽學)은 광양현감(光陽縣監)을 지냈고, 할아버지 최정석(崔鼎錫)은 통덕랑(通德郞)이며, 아버지 최흥원(崔興遠)은 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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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학자. 최화진(崔華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사구(士久), 호는 칠실(漆室)이다. 최화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최정석(崔鼎錫)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흥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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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배향된 학자이며 효자. 도덕과 학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행하여 조정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대구 칠계(漆溪)에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칠계 선생(漆溪先生)이라 하였다. 최흥원(崔興遠)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원(興源), 자는 태초(太初), 초자(初字)는 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 별호는 수구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