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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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 일대에서 있었던 공산전투를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윤기(尹愭)[1741~1826]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이다. 이익(李瀷)을 사사하였다. 윤기는 1773년(영조 4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년간 학문을 연구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식년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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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에 얽힌 역사를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윤기(尹愭)[1741~1826]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이다. 이익(李瀷)을 사사하였다. 윤기는 1773년(영조 4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년간 학문을 연구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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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허목이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주변에 있었던 도산사에 대해 적은 기문. 허목(許穆)[1595~1682]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찬성 허자(許磁), 할아버지는 별제 허강(許橿), 아버지는 현감 허교(許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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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임진왜란 때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의 공산성을 수비한 손기양의 행실을 기리기 위해 지은 행장. 이익(李瀷)[1681~1763]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이다. 이익은 실용적인 학문을 주장하였다. 즉 당색 중심 정치를 타파하고 관료기구의 개편을 주장했다. 또한 양반도 생업에 종사해야 함을 피력했다. 또한 인재 등용도 종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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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배향된 학자이며 효자. 도덕과 학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행하여 조정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대구 칠계(漆溪)에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칠계 선생(漆溪先生)이라 하였다. 최흥원(崔興遠)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원(興源), 자는 태초(太初), 초자(初字)는 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 별호는 수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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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학자인 허훈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속암인 금당암에 있는 사리탑 비명. 허훈(許薰)[1836~1907]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이다.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황덕길(黃德吉)로 이어진 성호학파의 실학을 이은 허전(許傳)의 집지문인(執贄門人)이다. 이이(李珥)의 성리설이 이황(李滉)의 견해와 다른 문제들을 비판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