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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 성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501
한자 世居姓氏
영어공식명칭 Residing Family Nam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윤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 성씨 - 대구광역시 동구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와 그들의 집성촌.

[개설]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해안현(解顔縣)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조에 따르면 해안현에는 모(牟), 백(白), 하(河), 신(申), 정(丁), 제(諸), 진(秦), 박(朴)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내성(來姓)이며, 그 외에 한(韓) 정도가 있다고 되어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해안현에 토성(土姓)이 없었던 것이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세거 성씨는 임란 이후부터 구한말까지 이주한 성씨와 세거지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장수황씨(長水黃氏) : 면와(勉窩) 황경림(黃慶霖)[1561~1625)이 임진왜란 후 가솔을 이끌고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초례산(醮禮山) 안방곡(安芳谷)에 정착한 것을 시초로 한다. 황경림의 손자 중 황희룡(黃羲龍)은 동구 동내동[동내2동]에 정착했고, 황우룡(黃禹龍)은 동구 신기동 신촌에 정착했으며, 황원룡(黃元龍)은 동내동[동내1동]에 정착하였다. 이후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장수황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2. 일직손씨(一直孫氏) : 밀직사를 지낸 손득수(孫得壽)의 후손 손세경(孫世卿)이 밀양에서 대구로 이주했으며, 그 손자 손홍주(孫弘冑)부터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정착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3. 인천채씨(仁川蔡氏) : 여말(麗末)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채귀하(蔡貴河)의 아들 채영은 부친의 뜻에 따라 출사하지 않고,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입향했다. 이후 번창하여 많은 명현을 배출하고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인천채씨의 맥을 형성했다.

4. 은진송씨(恩津宋氏) : 은진송씨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무렵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먼저 정착한 대구광역시 동구 매여동에 뒤이어 정착한 이후, 밀양박씨와 함께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5. 영천이씨(永川李氏) :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낸 이중량(李仲樑)의 손자 단암(檀巖) 이사경(李士慶)[1563~1628]이 안동 예안[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으로부터 대구부 해안현[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에 입향해 정착했다.

6. 영양남씨(英陽南氏) : 용담 현령(龍潭縣令)을 지낸 남수(南須)의 후손인 석호(石湖) 남실(南實)이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 되기 위해 동구 입석동에 입향한 것을 시작으로 한다. 이후 용암(龍菴) 남명신(南命新)과 그의 아들 남예연(南禮淵), 남석로(南碩老) 등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며 대구지역 영양남씨의 맥을 형성했다.

7. 순흥안씨(順興安氏) : 고려 말의 대학자 안향(安珦)의 후손인 추산(秋山) 안황(安璜)이 임진왜란을 피해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內洞)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8. 성주여씨(星州呂氏)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성주여씨 일부 분파가 난을 피해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9. 밀양박씨(密陽朴氏)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밀양박씨대구광역시 동구 매여동(梅余洞)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10. 성주배씨(星州裵氏) : 성주배씨 15세손 우옹(愚翁) 배극념(裵克念)이 성주 금원(琴院)에서 동구 해안현(解顔縣)으로 이거하여 정착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배극념의 아들 배달천(裵達川), 배경가(裵褧可), 손자 배영거(裵映琚)·배영황(裵映璜)·배영우(裵映瑀)·배영림(裵映琳)를 거치며 더욱 번창했다.

11. 문화유씨文化柳氏) : 1700년대 말 문화유씨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新西洞)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12. 경주최씨(慶州崔氏) : 경주최씨 광정공 최단(崔鄲)의 손자 최맹연(崔孟淵)이 만년에 중앙 관직에서 밀려나 대구광역시 도동에 거주하면서부터 대구지역에 경주최씨들이 세거하기 시작했다. 임란 때, 대구의병가장(大邱義兵假將)을 지낸 최계(崔誡)의 둘째아들 대암(臺巖) 최동집(崔東㠍)칠계동[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으로 입향했다. 현재에도 동구 옻골에는 경주최씨들이 다수 세거하며 다양한 전통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구 지역 대표적 마을에 세거하는 성씨들을 열거하면, 대략 동구 율암동(栗岩洞)연주현씨(廷州玄氏), 당동(唐洞)의 청도김씨(淸道金氏), 평광동(坪廣洞)단양우씨(丹陽禹氏), 평광동(坪廣洞) 당남리(唐南里)경주김씨(慶州金氏), 신평동(新坪洞)의 파주염씨(坡州廉氏), 덕곡동(德谷洞) 상리(上里)의 달성서씨(達城徐氏), 능성동(能城洞)경주이씨(慶州李氏), 덕곡동(德谷洞) 덕산(德山)동래정씨(東萊鄭氏), 덕곡동(德谷洞) 대왕재(大王岾)안동권씨(安東權氏)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구한 말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대체로 입향조와 입향 경위가 불분명하며, 현재는 고령화에 따라 집성촌으로의 기능을 상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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