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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402
한자 把溪寺祈永閣
영어공식명칭 Giyonggak Pavilion of Pagye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은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96년연표보기 - 파계사기영각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 파계사기영각 4위 임금 위패를 서울특별시로 이안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 - 파계사기영각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 - 파계사기영각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7월 25일연표보기 - 파계사기영각,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파계사기영각,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현 소재지 파계사기영각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동구 중대동 7]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파계사 덕종
관리자 파계사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에 있는 1696년 건립된 불전.

[개설]

파계사기영각(把溪寺 祈永閣)영조 임금을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전각이다. 예전에 파계사기영각에 덕종[세조의 첫째 아들이며 성종의 아버지], 선조, 숙종, 영조 조선의 네 임금의 위패를 봉안한 내력이 있다. 이로인해 파계사는 조선 왕실의 원찰이 되었다. 또한 파계사기영각은 다른 말로 ‘어필각(御筆閣)’이라 불리는데, 숙종, 영조, 정조의 어필을 보관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위치]

파계사기영각파계사의 주법당인 원통전(圓通殿) 바로 뒤 북서쪽에 있다.

[변천]

파계사기영각은 1696년(숙종 35) 현응 조사성전암(聖殿庵)과 더불어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1974년과 1983년 두 번에 걸친 중수가 있었다. 덕종, 선조, 숙종, 영조 4명 임금의 위패는 1910년에 서울특별시로 옮겨졌고, 지금 파계사기영각에는 불상과 탱화만 걸려 있다.

[형태]

파계사기영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화강석을 바르게 쌓은 기단 위에 건립되었다. 공포 양식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설치한 주심포 양식[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의 건물이다.

[현황]

파계사기영각 안 뒷벽 앞에 불단을 조성해 불상을 두었으며 뒷벽에는 탱화가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파계사기영각은 조선 후기 오랜 세월 동안 임금의 위패를 봉안한 전각으로서, 조선후기 원찰 연구에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파계사기영각은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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