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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394
한자 大邱桐華寺地藏十王圖
영어공식명칭 Buddhist Painting of Donghwasa Temple, Daegu (Ksitigarbha Bodhisattva and Ten Underworld Kings)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소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28년연표보기 -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8월 24일연표보기 -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보물 제177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장처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1길 1[도학동 35]
성격 불화
작가 쾌민|체환|체준|굉원|법징|새정|지성
소유자 동화사
관리자 동화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 대웅전에 봉안된 1728년 제작된 불화.

[개설]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는 1728년(영조 4) 선찰(善察)이 발원하고 쾌민(快旻), 체원(體還), 체준(體俊), 굉원(宏遠), 법징(法澄), 새정(璽淨), 지성(智性) 등 7명 화승이 제작하였다. 수화승 의균을 비롯하여 경상도 지역 25개 사찰의 승려 80여 명과 신도 40여 명이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제작에 시주로 참여했다.

의균은 18세기 전반 동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동화사 아미타회상도」(1699), 「동화사 아미타극락회상도」(1703)[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제작하였다. 또한 석민과 함께 「파계사 원통전 석가모니후불도」(1707), 「포항 보경사 괘불도」(1708), 「북지장사 지장시왕도」(1725)를 조성하였다. 또한 의균은 쾌민과 함께 영천 법화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제작에 참여하였다. 의균과 체환과 함께 파계사 원통전 석가모니불, 「포항 보경사 괘불도」를 함께 제작하였다. 굉원은 석민과 함께 「북지장사 지장보살도」를 조성하였다. 따라서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를 제작 및 시주한 사람들은 화풍의 유사성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의 크기는 가로 228㎝, 세로 187.7㎝로 대형 불화이다. 화폭에 본존 지장보살, 시왕, 판관, 지옥사자, 선악동자, 옥졸, 6보살 등 총 35명에 이르는 명부의 권속을 배치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지장보살이 이중륜광(二重輪光)을 배경으로 수미단 위 연화좌에 결가부좌[두 다리를 서로 교차시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하고 있으며, 수미단 옆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중국 양주에 있는 개원사의 승려가 우연히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지장보살의 협시가 됨]와 무독귀왕(無毒鬼王)[지장보살의 오른쪽에 서 있는 상으로 귀신왕으로 대개 문관 또는 왕의 모습으로 표현]이 서 있으며, 이들 지장보살삼존이 이루는 정삼각형 구도로 권속들이 배열되었다. 상단 좌우로는 6명 보살이 있다.

본존 지장보살은 승형(僧形)으로, 오른손에는 보주[보배로운 구슬]를 들고 왼손에는 긴 육환장(六環杖)[승려들이 사용하는 고리 여섯 개 달린 지팡이]을 비스듬히 들고 있다. 얼굴은 푸근한 귀공자 타입의 원만상이며, 활모양의 눈썹과 가늘고 긴 눈, 아담한 코, 작은 입술 등 이목구비가 가는 필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마 가운데에는 팔(八)자형 머리카락이 그려져 있고, 입술의 아래위, 턱에도 형식화된 수염이 표현되었다.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약간 큰 듯 하지만 적당히 넓은 어깨와 넓은 무릎 폭의 안정된 결가부좌 자세로 인해 신체는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정사각형에 가까운 건장한 체구를 보여준다. 목에는 가늘게 삼도(三道)가 표현되었으나 아래쪽으로 쳐져서 마치 목걸이를 한 듯하며, 넓게 트인 가슴에는 화려한 영락을 착용하였다. 안에 군의(裙衣)[허리에서 무릎 아래를 덮는 긴 치마 모양의 옷으로 불·보살이 입는 하의]를 입고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쳤으며, 가사 자락이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고 있다. 조의가사(條衣袈裟)에는 고려불화부터 유행한 흰색의 작은 화문이 시문되어 있으며 가사 단에는 활짝 핀 꽃문양이 그려져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모두 합장한 채 본존을 향해 서 있다. 도명존자는 지장보살과 같은 조의가사를 걸쳤으며, 무독귀왕은 문관 차림에 원유관(遠遊冠)[임금이 조하(朝賀)때 쓰던 관]을 쓰고 있다. 이들 옆으로는 시왕이 각각 5명씩 합장 또는 홀(笏)[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에 손에 쥐던 물건]을 쥐고 서 있는데, 지장보살의 왼쪽에 있는 염라대왕만이 일월관(日月冠)을 쓰고 있어 10왕의 대표임을 보여주고 있다. 시왕 옆에는 사자(使者)가 각각 1구씩 배열되었고, 지장보살의 옆에도 2구의 지옥사자가 배열되었다. 사자들은 양각(兩角)이 높게 솟은 관을 쓰고 두루마리와 번(幡)[깃발]을 들거나 합장하고 서있다. 이러한 구도는 사람이 죽으면 사자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말을 타고 검은 번을 들고 죽은 자의 집에 찾아가 데리고 온다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에서 확인되는 내용이다. 사자들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는 망자의 죄상을 적은 명부이다. 4명의 사자 중 화면 하단 좌우에 그려진 2명은 「북지장사 지장시왕도」(1725)에서처럼 머리와 옷자락을 펄럭이듯이 표현되어 있다.

[특징]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염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화풍은 의균의 화풍과 유사성이 있다. 의균 화풍은 균형잡힌 신체 표현, 담채색을 사용한 은은한 색채, 철선묘[필치에 표출성이 없고 일정 속도, 같은 굵기로 붓을 사용]의 안정감 있는 필선 등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는 조성 연대가 확실하며, 참여한 화승들의 명단까지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가 18세기 초 경상북도 내륙 화사들의 화풍상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는 2012년 8월 24일 보물 제1773호로 지정받았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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