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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348
한자 大邱都市計劃
영어공식명칭 Daegu City Planni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1년 - 일제에 의해 동구에 도시계획이 추진됨

[정의]

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추진된 도시계획과 지방행정구역의 재편.

[대구의 도시계획]

1931년 대구광역시 동구에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특히 ‘대(大)대구의 건설’을 목표로 한 도시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새롭게 추진된 도시계획은 크게 하나는 대구 인근 지역을 대구에 편입하는 시구 개정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대대구의 건설의 목표로 하는 사단 유치, 비행장 건설, 동촌 개발, 종방 유치 등을 포함하는 계획이었다.

[대구부 시가지 계획과 동구 행정구역의 개편]

1937년 5월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청]의 시가지 계획이 공고된 이래 1938년 10월 1일 달성군의 수성면[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성군 달서면, 달성군 성북면 등 3개 면이 대구광역시에 편입하였다. 1938년 9월 27일에 「조선총독부령 제196호」에 의해 달성군 성북면 침산동·산격동·검단동·복현동이 대구부 침산동·산격동·검단동·복현동으로,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봉덕동·두산동·지산동·범물동·황청동·범어동·효목동·만촌동·상동·중동·하동·신천동·신암동이 대구부 대명동·봉덕동·두산동·지산동·범물동·황청동·범어동·효목동·만촌동·상동·중동·하동·신천동·신암동으로, 달성군 달서면 원대동·조야동·평리동·비산동·노곡동·성당동·내당동·상리동·중리동·이현동이 대구부 원대동·조야동·평리동·비산동·노곡동·성당동·내당동·상리동·중리동·이현동으로 행정 구역이 변화되었다. 그리고 대구부로 편입된 수성면, 달서면, 성북면에는 대구부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38년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령 제196호」에 따라 대구부의 구역을 확장하였다. 기존 대구부에 달성군의 수성면 전역[4개 동]과 성북면내 14개 동, 달성면 10개 동으로 확정되었다. 그 가운데 동구에 해당하는 신천동, 신암동, 효목동[일부], 만촌동[일부], 범어동[일부] 등이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이로써 대구부의 행정구역의 면적은 115.64㎢가 되었고, 인구는 17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대구부 가로망 정비 사업과 동구 지역 도로망의 확장]

대구부는 가로망 정비 사업, 곧 가로선 수 144에 총연장 20만 7,800m를 계획하였다. 동구와 관련된 사업을 보면 신천 제방부터 금호강 아양교까지 가로망, 신암동·신천동·범어동 서부 가로망 등이 계획되었다. 또한 대구역에서 침산동과 산격동을 거쳐 동촌비행장까지 이어지는 도로망도 계획되었다. 이 도로망은 동촌유원지와 연결되는 공원 조성의 의미와 군사비행장 동촌과 연결되는 군사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 것이었다.

[대구부 비행장 건설과 동촌비행장]

대구부의 비행장 건설은 최종적으로 1937년 1월 동촌비행장이 개장하면서 마무리되었다. 1930년대 초반부터 추진된 비행장 건설은 193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 선정을 놓고 달성군 해안면[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일대], 달서면 원대동[현재 대구광역시 북구 원대동], 달성군 월배면[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동 일대] 등 세 곳을 물색하다가 해안면동촌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해안면 동촌에는 1931년에 준공된 해안수리조합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조합의 전체 면적 992㎡[30만 평] 중 절반에 해당하는 463㎡[14만 평]이 비행장에 편입하였다. 동촌비행장이 건설되면서 부속 시설인 무선발신소가 동촌 아양교 부근에, 무선수신소는 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각각 건립되었다. 개장 이후 동촌비행장은 군사비행장으로 활용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본과 연결하는 민간공항의 역할도 하였다. 동촌비행장은 조선을 일본과 만주를 연결하는 거점공항으로서 위치를 가졌다.

[금호강 연안 제방 공사와 동촌유원지]

동촌에서는 홍수방지를 위한 금호강 연안 제방 공사가 추진되었다. 유원지로 각광받고 있던 동촌유원지금호강의 홍수로 인해 매년 유원지와 인근 농토가 수해를 입는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이에 1934년 당국이 40여만 원의 공사 예산을 투입하여 하천을 개수하고 방천을 새로 축조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또 대구시는 1982년부터 동촌유원지 개발을 추진하였다. 1990년에는 1996년까지 공사비 2백억 중 30억을 투입하여 유원지 기반시설을 다질 계획을 추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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