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139
한자 天王堂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천왕당」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천왕당」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관련 지명 천왕당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고용인|부녀자|무당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담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자연부락인 천왕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천왕당」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자연부락인 천왕당(天王堂)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천왕당」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자연부락인 천왕당(天王堂)[서낭당]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100여 년 전 지금의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 건너 언덕길에는 서낭당이 있었다. 당시 내당동(內唐洞) 일대가 산재부락(散在部落)을 이룬 농촌이라, 모내기와 김매기를 마치면 마을 단위로 농악을 울리고 씨름을 하였다. 당시 두산동(斗山洞) 마을의 고용인들이 소를 타고 농악을 울리며 서낭당에서 고제(告祭)를 올리고 출전하면 승리하였으나, 그냥 출전하면 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패배하였다. 환자가 생겼을 때는 서낭당 옆 우물물로 목욕재계하고 서낭당에서 기도를 올리면 일시에 병이 나았다. 또 아들이 없는 부녀자가 서낭당에서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틀림없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무당을 초청하여 굿을 한 뒤 서낭당을 두류산(頭流山)으로 옮겼다. 하지만 당시 근방에 살던 한센병 환자들의 자녀들이 장난삼아 돌담을 훼손하고 나무를 베는 바람에 50여 년 전에 서낭당이 사라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천왕당」은 지명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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