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2년에 제작된 『1872년지방지도』 중 경상도 경산현의 지도. 『1872년지방지도(一八七二年地方地圖)』「경산지도(慶山地圖)」는 1872년(고종 9) 경상도 경산현에서 제작하여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수합한 지도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지방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하면서 「경산지도」가 제작되었다....
-
1872년에 제작된 『1872년지방지도』 중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지도. 『1872년지방지도(1872年地方地圖)』「칠곡지도(㓒谷地圖)」는 1872년(고종 9) 칠곡도호부에서 제작하여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수합한 지도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지방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하면서 「칠곡지도」가 제작되었다....
-
1872년에 제작된 『1872년지방지도』 중 경상도 하양현의 지도. 『1872년지방지도(一八七二年地方地圖)』「하양현지도(河陽縣地圖)」는 1872년(고종 9) 하양현에서 제작하여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수합한 지도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지방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하면서 「하양현지도」가 제작되었다....
-
1872년 편찬된 군현 지도 가운데 현풍현을 그린 지도. 『1872년 지방 지도』는 흥선 대원군이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 확립과 서양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국 군현의 읍지 편찬과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한 결과물이다. 총 459매의 『1872년 지방 지도』는 조선 시대 관찬 지도 제작 사업의 마지막 성과로 평가되...
-
1905년 달성 도동서원에서 경주 옥산 서원으로 보낸 연락문. 경주 양동 마을에서 발생한 손씨 가문과 이씨 가문 사이의 학문 연원 시비와 관련하여 경주 옥산 서원 측에서 사건의 전말과 손씨 측의 행위를 비난하는 통문을 도동서원에 보내오자 1905년 5월 15일 그에 대한 도동서원 측의 의견을 적어서 옥산 서원으로 보낸 것이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이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신규(姜信圭)[?~?]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상주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영주(姜永周)[?~?]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공립소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계몽운동 단체. 개진협회는 1898년 대구공립소학교 학생들이 근대적 학문 토론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하시찬을 제향하는 개항기 사당. 경덕사(景德祠)는 조선 영조·정조 때 학자인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제향하는 곳이다. 하시찬은 심재(心齋) 송환기(宋煥箕)와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심성의 오묘함과 경학(經學)과 예학(禮學)의 요결을 터득하였다. 1789년(정조 13) 39세 때 독무암서(獨茂巖棲)를...
-
1908년 대구에 있는 경상감영의 부속 건물인 객사를 철거한 사건. 대한제국 시기 일제는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을사조약을 계기로 본격적인 내륙 침탈에 나섰다. 철도 부설과 함께 대구로 들어온 일본인들은 경상북도 관찰부와 함께 대구읍성을 헐어 버리고 난 뒤 경상감영의 객사 철거를 시도하였다....
-
개항기 대한제국 내장원이 대구와 경상북도의 광산 관리와 광세 징수를 위하여 만든 조직. 경상북도 금광위원(慶尙北道金鑛委員)은 대한제국의 내장원(內藏院)이 보유한 대구와 경상북도의 광산을 관리하고 광세(鑛稅)를 징수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유학자 우성규의 문집. 우성규(禹成圭)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경도(景陶)이다. 1830년(순조 30)에 달성에서 태어나 1905년(고종 42)에 사망하였다. 1865년(고종 2) 만동묘 훼철령에 상소를 올려 반대하는 뜻을 밝히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영덕 현령, 예안 현감...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1882년 건립된 대명14현을 기리는 재실. 1636년 병자호란 직후, 대구지역의 대표 유학자 14명은 숭정처사(崇禎處士)를 자처했다. 14명은 모두 ‘명(明)’ 자가 들어가는 호(號)와 시(詩)를 지었고, 단체로 팔공산 아래로 거처를 옮겨 살았다. 이들을 일러 ‘대명14현’이라 하며, ‘대명14현’을 추모하는 재실이 경현당이다. 「대명동동은록(大明...
-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학교 교사. 계성학교아담스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 안에 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곽종심 가옥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중앙로16길 35-6[부리 326]에 있다. 현풍읍현풍 파출소에서 현풍교를 건너 우측의 현풍중앙로16길로 약 150m 들어가면 달성군 현풍읍 부 1리 노인정이 있다. 곽종심 가옥은 부 1리 노인정 뒤편 골목길 안에 있다....
-
1889년 8월 현풍 현감의 인수인계를 위하여 현풍 관내의 건물, 보관 물품 및 재정 내역과 변동 사항을 기록한 장부. 중기(重記)란 각 관청마다 보유한 물품의 변동 사항을 기록하여 두었다가 일정한 기간마다 상급 기관에 보고를 하며, 관리 교체 시 해유(解由)를 위한 인수인계 문서이다. 『관중각처중기(官中各處重記)』는 실제 1889년(고종 26) 8월 1일에 신임 현풍 현감이 임명...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정자. 광거당(廣居堂)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본리리 410]에 있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위치한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 내에 있다. 달성군화원 중학교 정문을 지나는 성암로를 따라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의 화원 자연 휴양림 방향으로 천내천을 따라 약1.2㎞ 가면 인흥길의 왼편에 남평 문씨...
-
1909년 대구에서 결성된 여성 계몽운동 단체. 교육부인회(敎育婦人會)는 대구에서 계몽운동을 펼친 이일우의 계수(季嫂) 김화수(金和秀)를 비롯한 100여 명의 회원이 결성한 여성 계몽운동 단체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연간(具然侃)[1844~191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성강(聖剛), 호는 근와(謹窩)이다. 아버지는 구택조(具宅祖)이고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 특별 회의에서 국채보상운동 모금을 위하여 김광제, 서상돈 등 10명의 공동 발기인의 이름으로 작성한 취지서. 「국채보상취지서(國債報償趣旨書)」는 국채 1,300만 환을 갚기 위하여 보상금 모금의 필요성과 방법을 제기한 문서이다.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의 특별 회의에서 사장 김광제(金光濟)[1866~1920], 부사장 서상돈(...
-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 있는 개항기의 정려각. 권하규 효사각(權廈圭孝思閣)은 효자 권하규의 효행을 표창하고자 1892년(고종 29) 조정에서 내린 정려각이다. 권하규는 어머니를 간병할 때 정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디선가 한 마리의 신마(神馬)가 나타나 권하규를 태우고 가서 약을 구하여 왔고 위독하던 어머니가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에 조정에서 권하규에게 효...
-
개항기에 국채보상운동을 전담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는 국채보상운동을 전담하기 위하여 1907년 2월 21일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로 의연금 모금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와 효부. 김규환(金圭煥)[1868~?]의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아버지는 김정헌(金禎憲)이다. 부인 윤씨(尹氏)[?~?]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태호(尹泰鎬)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남수(金南洙)[?~?]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다동기생조합과 한남권번에서 활동한 대구 출신의 기생. 김남수(金南壽)[1890~?]는 189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동편에서 태어났다. 1900년 11세에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려 경상감영 교방 또는 대구부 교방에서 가무를 익혔다. 김남수는 가곡을 비롯하여 정재무, 승무, 경상도 민요 등에 뛰어났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김달준(金達俊)[1877~1956]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병순(金炳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석빈(金錫斌)[?~?]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김성륙(金成六)[?~1908]은 1863년경 대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
개항기 달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사성(賜姓) 김해(金海). 자는 국명(國明), 호는 남호(南湖). 임진왜란 때의 항왜장(降倭將) 김충선(金忠善)이 9대조로, 증조할아버지는 김한보(金漢輔)이고, 할아버지는 김양준(金養俊)이다. 아버지는 김정곤(金定坤)이며, 어머니는 이민열(李敏列)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부인은 김장(金墻)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우근(金遇根)[?~?]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재덕(金在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개항기의 정려각. 김해김씨 효부각(金海金氏 孝婦閣)은 순천김씨 김종도(金種道)의 아내인 김해김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효부 김씨는 열일곱 살에 출가하여 시아버지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만호(萬戶) 김준상(金俊常)의 병환을 10년 동안 변함없이 정성껏 간호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의원이 시아버지의 병을 고치려면 구렁이 알을 구하여 먹이라고 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운동가. 김화수(金和秀)[?~?]는 1909년 대구에서 100여 명의 여성들과 함께 교육부인회를 결성하였다. 교육부인회는 ‘여자교육회’로도 불렸다. 김화수는 교육부인회를 통하여 이일우(李一雨)·서상돈(徐相敦) 등이 발기하여 설립한 대구사립달서여학교(大邱私立達西女學校)의 운영을 지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화수는 여러 회원과 함께 200여 원의 기금을 모아...
-
개항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서흥(瑞興). 초휘(初諱)는 김진효(金鎭孝), 자는 충거(忠擧), 호는 수암(睡巖). 아버지는 학생(學生) 김희전(金熙典), 동생은 김기식(金麒埴), 김진식(金震埴), 김구식(金求埴), 김창식(金昌埴), 김홍식(金弘埴)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인동 장씨(仁同張氏) 장석용(張錫龍)의 딸이다. 장석용의 아들은 경상 관찰사를 역임한 장승원(張...
-
개항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윤약(允若), 호는 낙하(落下). 증조할아버지는 김경운(金慶運), 할아버지는 김규섭(金奎燮), 아버지는 김준동(金駿東), 외할아버지는 박경오(朴慶五)이다....
-
1907년 1월 대구에서 발생하여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경제 주권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가 대구광문사 내 문회(文會)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꾸는 특별회에서 대구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의 제안과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의 즉각 실행이 제의되면서 시작되었다. 대구광문사는 「국채 보상 취지서」를 만들어 주요 도시...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재실. 낙교재(洛橋齋)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6길 31-3[교항리 1473]에 있다. 달성군청 앞 달성군청 교차로에서 국도 5호선[비슬로]을 따라 대구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다 좌회전하여 약 800m 들어가면 대구 금계 초등학교가 있다. 대구 금계 초등학교 맞은편 아파트 단지 뒤편에 낙교재가 위치한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사원 추모 재실. 낙선재(樂仙齋)는 1860년경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기 위하여 묘소가 있는 파산(巴山)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다. 서사원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전경창(全慶昌)[1532~1585]·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장현광(張顯光)·김우옹(金...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달명의숙은 1906년 10월 경북 관찰부 관할인 낙육재(樂育齋)와 연계재(蓮桂齋) 소속의 전토를 합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달명의숙의 설립은 1906년 3월 새로 부임한 경북 관찰사 신태휴(申泰休)의 학교 설립에 대한 적극적 지원 정책의 결과였다. 신태휴는 경북 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대구사범학교, 측량강습소 등을 설치한 바 있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초중등 과정의 근대 학교. 1899년 대구의 지역 유지들이 설립한 초중등 과정의 근대 학교이다. 달성학교는 설립 취지서에서 나라를 개명시키기 위해서는 근대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강학, 교육과 기예 양성, 학문 증진 등을 달성학교의 설립 취지로 내세웠다....
-
개항기 대구 달성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근대 사립 학교. 교육 목표는 신문화(新文化) 또는 개화 교육이었다....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교구장 대주교의 주교좌 성당. 대구 계산동성당은 1886년부터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던 아실 폴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신부가 1902년 11월에 완공한 성당이다. 그 이전에는 1897년에 현재 자리에 있던 초가집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899년에 한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지었으나 1901년 화재...
-
1906년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1906년 대구에서는 대구 광학회(大邱廣學會)와 다른 별개의 계몽 운동 단체로서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가 설립되어 교육 운동과 경제 운동을 전개하고, 국채 보상 운동을 발기하여 전국적인 경제적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
1906년 8월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1906년 8월 대구에서는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와 다른 별개의 대구 광학회(大邱廣學會)가 설립되어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
1891년 2월 대구에서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외교 분쟁. 교안(敎案)의 문자적 의미는 종교와 관련된 분쟁 및 사건, 혹은 재판 안건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중국이나 한국에서의 서양 종교에 대한 반대 투쟁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1886년부터 1908년 사이에 적게는 141건, 많게는 305건의 교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교안(大邱敎案)은 1891년 2월 천주교...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사설 기생조합. 대구기생조합(大邱妓生組合)은 1909년 4월 일제에 의하여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관청에 예속되어 있던 교방(敎坊)의 관기(官妓)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서 영업과 권익 보호를 위하여 결성한 사설 기생조합이다. 대구조합, 대구기생조합소, 대구예기조합이라고도 하였다....
-
1907년 6월 대구에서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결성한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
-
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
개항기에 건립된 대구광역시 동구 대림동에 있었던 달성서씨 문중의 재실이자 주택. 1995년 『대구시사』에서는 대구 대림동 서진영 주택으로,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는 대구 대림동 서종호 주택으로 적혀 있다....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개항기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국동파 문중의 서사. 대구 도남동 유화당(大邱 道南洞 有華堂)은 1,600년대 중후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세거지를 마련한 인천 이씨 쌍명재공파(雙明齋公派) 국동파(菊洞派) 문중의 서사(書舍)이다. 현재 건물은 1864년(고종 1) 건립되었다. 1916년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별칭으로 ‘국동서실(菊洞書室)’이라고 불...
-
1903년 건립된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정자. 「향산기(香山記)」에 의하면 구로정이라는 명칭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향산 구로회’에 연원을 둔 것이라고 한다. 「구로좌목(九老座目)」에 나타나는 9인의 명단은 최운경(崔雲慶)·채정식(蔡正植)·도윤곤(都允坤)·곽종태(郭鐘泰)·최완술(崔完述)·채준도(蔡準道)·곽치일(郭致一)·서우곤(徐宇坤)·서영곤(徐永坤)이다....
-
개항기 대구의 일본거류민회가 대구읍성을 허문 후 읍성 자리에 도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구성한 조직. 대구도로위원회는 1906년 11월에 대구 일본인 거류민단이 대구읍성을 철거한 뒤 읍성 자리에 도로를 건설할 목적으로 구성한 조직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개항기 불화. 대구 동화사 감로도는 1896년 봉화(奉華), 인선(仁宣)이 동화사 종각에 봉안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동화사 감로도는 부처의 수제자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그 방법을 묻고 해답을 듣는 내용을 묘사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개항기 불화. 대구 동화사 금당 아미타극락회상도는 1887년(고종 24) 화승(畵僧) 부일(富一)이 조성했다. 현재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보존되어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대웅전에 있는 석가모니를 그린 불화. 대구 동화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는 1896년(건양 1)에 동호 진철(東昊震徹)을 수화사로 하여 봉화(奉華), 상조(尙祚), 용주(用周), 성연(性演) 등이 함께 조성했다. 진철은 19세기 후반 경기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1880년(고종 17)부터 경기도에 머무르면서 경선응석(慶船應釋)·영명천기(永明天幾) 등...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불화. 대구 동화사 사천왕도는 1896년(고종 33)에 화승(畵僧) 묘화(妙華), 진철(震徹)이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그린 그림으로 네 폭으로 조성되어 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에 있는 1888년 건립된 것으로 알여진 성산여씨 문중의 종당. 대구 부동 친목당은 1888년 개항기 대구 출신 유학자인 여사백이 강학하던 곳이다. 대구 부동 친목당은 현재 부동지역 성산여씨 문중의 종당으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눌암(訥菴) 여사백(呂師伯)은 자가 망여(望汝)이며, 지헌(止軒) 최효술(崔孝述)의 문인으로 문집인 『눌암집』이 있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교육기관. 대구사립사범학교는 1906년 3월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학교 설립에 매진하라는 대한제국 황제의 칙유와 1,000원의 하사금을 매개로 하여 달성군수 김한정과 함께 관덕정(觀德亭)[관덕당(觀德堂)], 고예재(考藝齋)를 수리하여 개교하였다. 관덕정은 대구읍성의 남문 격인 영남제일관 밖에 있었다. 대구사립사범학교 설립에 참여한 발기인과 기금 조성...
-
개항기 대구에 있던 교육기관. 대구사립양성학교는 대구에서 근대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운영되었다....
-
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설립한 객주 조직. 대구상무소(大邱商務所)는 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조선인 자본가의 이익을 구현하는 동시에 대구일본거류민단과 일본인상업회의소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한 객주 조직이었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대구·경북 지역 선교 목적의 선교 지회. 대구선교지회는 대구·경북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
1908년 대구에서 일본인이 창간한 신문. 1900년대 말 대구 지역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있었다. 1908년 9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통합하여 대구부 경정 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에 대구신문사조합을 설립하고 『대구신문(大邱新聞)』을 창간하였다.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는 대구일일신문사, 가토 이치로[加藤一郞]는 대구신보사의 이사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 용진마을에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대구 신용동 노태우 전대통령 생가가 있는 신용동과 용진마을은 원래 대구부 해서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신천동과 용진동을 합쳐서 신룡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달성군 공산면[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일대]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는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 신룡동, 1981년 대구직할시 동...
-
1909년 경상북도관찰사 박중양이 주도하여 만든 대구 최초의 십자도로. 을사조약을 계기로 1906년 대구에 이사청이 설치된 이후 대구읍성이 헐리고 대구읍성이 헐린 자리에 순환도로가 조성되었다. 이어 경상감영 객사가 철거되었다. 그 뒤 경상북도 관찰부의 관찰사 박중양(朴重陽)은 시가지 간선도로 개설 사업을 벌이면서 경상감영을 관통하는 십자도로 건설에 나섰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우편 업무를 담당한 기관. 대구우편국은 대구 지역의 우편 및 통신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1905년 10월 설립되었다....
-
1906년 대구의 경상북도관찰부와 일본인 사회에 의하여 추진된 대구읍성 철거. 대구읍성(大邱邑城)은 일본인들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관찰부와 일본인 사회에 의하여 1906년 철거되었다. 대구읍성의 철거로 전통 도시 대구의 풍광은 식민도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
개항기 대구에 설치된 통감부의 지방 통치기관. 대구이사청(大邱理事聽)은 1906년 대구부 동상면 포정동의 경상북도관찰부(慶尙北道觀察府) 내 선화당(宣化堂)에 설치된 통감부(統監府)의 지방통치 기관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거류민회는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감독 아래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자치단체의 기초를 확립하고,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감독 아래에서 일본인들의 행복을 도모할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
개항기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동포회는 1904년 6월 부산 일본영사의 감독 아래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최초의 일본인 자치 조직. 대구일본인회(大邱日本人會)는 1900년 11월 부산영사관 서기 이쿠다[生田端正平]가 대구를 방문하여 대구 거주 일본인과 함께 일본인 단체 결성에 대하여 상의를 한 뒤 일본인의 친목 도모와 정착 안정에 목적을 두고 결성되었다....
-
1906년 12월 대구에서 일본인 발행의 『대구신보』의 제호를 변경하여 발행된 일본어 신문. 『대구신보(大邱新報)』는 1906년 1월 경영난에 빠져 휴간한 『대구실업신보(大邱實業新報)』의 제호를 변경한 신문이며, 격일 발행에 한국어판도 발행하다가 한국어판을 없애고, 매일 발행으로 바뀌었다. 1906년 12월 다시 『대구일일신문(大邱日日新聞)』으로 제호를 바꾼 뒤에도 신문을 발행하였...
-
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양잠 재배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경상도는 조선시대부터 잠업을 하고 있었으며, 대표적 지역은 함창·상주·문경이다. 경상도는 양잠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첫째, 양잠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서리·습기 피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낙동강 연안 수백 리에 걸쳐 있는 황무지는 뽕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건조하여 누에똥을 제거하는 횟수가 줄...
-
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세무와 재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기관. 1908년 조선의 전체 인구는 978만 1671명, 호수(戶數)는 233만 3087호, 면적은 1만 4000리, 조세 수입은 1034만 604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233만 3249명, 호수는 55만 8155호, 면적은 2,104리, 조세 수입은 260만 3447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조선 전체 인구에서 약...
-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한 전신 사무국. 대구전보국(大邱電報局)은 대구 지역의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1가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대구종로초등학교(大邱鐘路初等學校)의 교육목표는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건강], 더불어 생활하는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는 어린이[창조인], 글로벌 세계를 꿈꾸는 어린이[세계인]’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교훈은 ‘다르게 생각하고 함께 꿈꾸는 어린이’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 있는 지물포. 대구지물상사(大邱紙物商社)는 1907년에 개업하여 110년이 넘은 지물포이며, 한지와 장판, 약재를 담는 첩지들을 취급한다....
-
대구 지역 최초의 의료 선교사인 존슨을 통하여 전개된 의료선교 활동. 대구 지역의 최초의 의사는 존슨(Dr. Woodbridge O. Johnson)[장인차] 의료 선교사이다. 존슨은 미국 북장로회의 해외 선교부 소속 의료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89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대구에 도착하였다. 존슨은 조랑말을 타고, 부인 에디스 파커는 장정 네 명이 메는 가마를 타고 짐꾼들과...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이승휘를 추모하기 위해 1875년에 건립된 재실. 대구 평광동 추모재는 인천이씨 23세(世) 장사랑(將仕郎) 이승휘(李承輝)[1579~1639]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승휘의 묘소 아래에 세워진 묘소 수호 재실이기도 한 대구 평광동 추모재는 1875년(고종 12)에 후손들이 건립했다. 이승휘는 어려서부터 효행과 학행이 있어 지역 사림으로부터 추중을 받...
-
개항기 대구 약령시의 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경제단체. 대구 한약업자 조합(大邱漢藥業者組合)은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내 한약종상(漢藥種商)들이 대구 약령시(藥令市)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대구 한약업자 조합은 대구한약상조합, 대구한약업조합, 대구한약자조합, 대구한약조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 신설된 군대 조직. 대구헌병분대(大邱憲兵分隊)는 1905년 9월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러·일 간에 맺은 강화조약인 포츠머스조약을 계기로 편성된 주둔군 헌병대에서 비롯되었다. 주둔군 헌병대는 대구를 비롯한 서울·부산·인천·평양 등 12개 지역에 헌병대 분대를 설치하고, 그 밑에 56개의 헌병분견소를 두었다. 1906년 3월 주둔군 헌병대는 통달(通達) ‘제한 주차...
-
개항기에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권문해(權文海) 외 121인이라고 기록된 읍선생과 1831년 신묘식을 기준으로 한 호구 등으로 볼 때, 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대구부읍지」를 전사(轉寫)한 읍지로 추정된다. 한편, 책의 끝부분에 첨부된 읍지보궐(邑誌補闕)의 기록은 1898년이 하한이다....
-
1899년 간행된 경상북도 대구군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1899년(광무 3) 1책으로 간행된 대구군의 읍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대구부읍지』에는 1895년 이후 지방제도 개편 내용과 1898년 무술식 호구가 실려 있고, 의정부의 ‘참사관실(參事官室)’ 도장이 찍혀 있어 1899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
1899년 이후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32년(순조 32) 5월에 이임된 관찰사 박기수(朴岐壽)가 기록된 영선생과 1831년 신묘식을 기준으로 한 호구 등으로 볼 때, 1832년경 간행된 『대구부읍지』를 등사 저본으로 하였으며, 1899년(광무 3)에 작성된 ‘읍지보궐초건책(邑誌補闕草件冊)’을 합하여 편찬되었다....
-
개항기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사례. 『대구부사례(大邱府事例)』는 미사액원사(未賜額院祠) 항목에 1871년의 서원훼철령이 기록되어 있고, 1869년 부임하여 1874년 이임된 관찰사 김세호(金世鎬)가 대구도호부의 전결(田結)에 부과된 세금을 감면해 준 사실이 기록된 사실 등으로 볼 때 1871년(고종 8)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읍지를 상송할 때 함께 작성...
-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대구광학회에서 자치 조직으로 설치한 기구. 대구시의소(大邱市議所)는 1906년 대구광학회가 대구부민의 지식을 개발하고, 민권(民權)을 부식하기 위하여 결성한 자치 기구였다....
-
대구와 현풍이 표기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1861년 이후 채색으로 모사한 필사본 지도. 현존하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인본들은 대다수가 채색을 한 형태로 남아 있고, 필사본으로 모사하고 채색한 경우도 다수 있다. 이러한 채색본 지도가 제작되는 것은 『대동여지도』가 단지 지도로만 기능하지 않고, 예술품으로 간주하여 감상의 대상으로 평가했던 전통을 계승한 것과도 관련된 것이...
-
1864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와 현풍현 일대의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22첩으로 구성된 목판본에 채색한 전국 지도이다. 『대동여지도』 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850-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동여지도』「대구부·현풍현지도...
-
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되어 활동하였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는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 강요에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통감부에 의하여 해산당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간부들과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애국계몽운동 단체이다....
-
1908년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대한협회 대구지회는 1907년 국채 보상 운동 이후 대구, 달성 지역의 계몽 운동 세력이 설립한 계몽 운동 단체로서 대구 광문사와 대구 광학회를 역사적으로 계승하면서 지역에서 교육 운동과 실업 운동을 전개하였다....
-
1907년 장지연이 저술한 『대한 신지지』에 수록된 부도를 엮어 만든 『대한신지지부지도』 중 대구와 현풍이 수록된 경상북도 지도. 1907년 장지연(張志淵)[1864~1921]이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저술한 『대한 신지지(大韓新地志)』에 수록된 부도만을 모아 만든 지도책으로, 철판본이다. 1896년 이후 13도로 행정 구역이 바뀐 상황을 반영한 도별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경상...
-
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된 유사 자치 기구. 대한제국기 대구시청(大韓帝國期大邱市聽)은 윤영섭 등이 민의의 자치 기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최치상을 추모하는 개항기 재사. 도남정사는 조선 후기 제선공가감역(除繕工假監役)을 지낸 성균진사(成均進士) 최치상(崔致翔)[1831~1886]을 추모하기 위하여 1899년(고종 39)에 지은 재사이다. 별칭으로 ‘추원재(追遠齋)’라고도 불리는 도남정사는 최치상의 손자인 최해윤(崔海潤)이 지었다. 최해윤은 1924년 5월 김창숙(金昌淑)의 독립운동 자금...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성호(都性浩)[?~?]는 1902년부터 1906년 사이 경상북도관찰부 관할인 낙육재(樂育齋)에서 공부한 유생 출신이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도전호(都顓浩)[1855~1936]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경원(敬源), 호는 용암(龍菴)이다. 아버지는 도진형(都鎭馨)이고, 어머니는 옥산장씨(玉山張氏)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정호(都正浩)[?~?]는 대한제국의 외획 제도로 운영된 경남봉쇄원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지역 최초의 계몽운동 단체.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등 개화파 지식인들은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어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을 창립 사업으로 하여 발족한 독립협회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외세의 배격, 내정 개혁을 주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립하였으며, 1898년 서...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1865년 건립된 경주최씨 문중 서당. 독암서당은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강동·독암의 경주최씨 문중에서 설립한 ‘문중서당(門中書堂)’이자 ‘동계서당(洞契書堂)’이다. 봉촌(鳳村) 최상룡(崔象龍)이 쓴 「독암재기」에 의하면 이 지역 경주최씨 문중 12가(家)가 모여 독서당 건립을 도모했다고 한다. ‘독암’이라는 명칭은 서당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600m...
-
1860년 4월에 최제우가 창도한 종교.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1824~1864]는 1864년(고종 1) 3월 10일 대구 지역에서 처형되었다. 동학은 처음 경주에서 1860년(철종 11)에 창시되었지만, 대구 지역에서 교조인 최제우의 순교로 인하여 동학이 완성됨으로써 본격적인 교세 확장이 시작되었다. 최제우는 명상과 사색을 통하여 도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최제우는 득도한...
-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던 대구부성의 북쪽에 세워졌던 망루. 망경루(望京樓)는 1870년 경상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 김세호(金世鎬)[1806~1884]가 대구부성을 보수하면서 북쪽에 세운 망루이다. 원래 대구부성은 조선 후기 영조 때 민응수(閔應洙)[1684~1750]가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쌓았는데 이후 성이 낡고 훼손되어도 방치되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당시의 공사 내용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본리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재실. 망운재(望雲齋)는 성주 이씨(星州李氏) 가문에서 선조를 위해 세운 재사(齋舍)로 190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던 선교사 맥파랜드의 집. 맥파랜드 주택은 미국인 선교사가 설계한 맥파랜드(E. F. Mcfarland)의 주택이다. 맥파랜드 주택은 선교사들이 중국인 조적공과 일본인 목수들을 동원하여 지은 지상 2층, 지하 1층의 집이었다. 건물의 기초에 사용한 돌은 1906년 대구 성곽을 철거한 성곽돌을 주워 사용하였고, 창호 철물 및 양변기, 세면기 등은 미국에서...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 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명심보감』의 책판. 『명심보감(明心寶鑑)』판본의 원서(原書)는 추계 추씨(秋溪秋氏)[전주 추씨]인 노당(露堂) 추적(秋適)[1246∼1317]이 편저한 것이다. 『명심보감』은 조선 시대 어린이들의 한문 교양서로, 『천자문(千字文)』을 익힌 다음 과정의 교재로 널리 쓰였다. 현재 전하는 『명심보감』은 1869년(고종 6)...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개항기의 제향 공간. 문우관은 구한말 대구광역시 출신의 후담(後潭) 채헌식(蔡憲植)[1855~1933]이 상덕사의 비석과 비각을 보전하기 위하여 세운 서숙(書塾)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광욱(朴光郁)[?~?]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박민동(朴民東)[1874~?]은 1874년에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옥(朴炳鋈)[?~?]은 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구 지역 교육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승동(朴承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정동(朴晶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달성 출신의 문신·학자. 본관은 순천. 자는 여경(汝卿), 호는 만휴(晩休). 증조할아버지는 박성호(朴聖浩)이고, 할아버지는 박광구(朴光搆)이며, 아버지는 박기건(朴基健)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성오(金聲五)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원(朴泰元)[1897~1921]은 19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제일교회에서 운영한 대남학교를 거쳐, 1911년에는 계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6년에 평양 숭실대학교 문학부에 진학하였으나, 곧장 거처를 서울로 옮긴 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박화준(朴華俊)[1881~1911]은 1881년경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신돌석(申乭石)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박화식(朴華植)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백운 이화상이 건립한 정자. 백운정(白雲亭)은 이화상(李華祥)[1842~1915]이 만년에 자신이 거처하던 집 곁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화상의 자(字)는 재중(載重)이고 호(號)는 백운(白雲),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백운정은 이화상의 호에서 따온 명칭이다....
-
개항기 달성친목회가 대구에 설립한 강습소. 법률야학강습소(法律夜學講習所)는 청년층의 친목 도모와 교육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대구에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인 달성친목회가 대구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근대 법률 체계와 의미를 계몽하기 위하여 1908년 9월 설립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일본 군대. 보병80연대(步兵八十聯隊)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2개 사단과 함께 대구에 배치된 군대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사찰. 보현사(普賢寺)는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개항기에 창건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직할 포교당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 북후정(北堠亭)은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읍북루(揖北樓)라고 하고 “부(府)의 서쪽 3리(里)[약 1.19㎞]에 있다”라고 하였다.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에서도 읍북루라 하고 ”부(府)의 서쪽 3리에 있다. 일명 북후정(北堠亭)이다”라고 하였다. 두 읍지의 기록을 따르면 북후정은 초기에 ‘읍북루’로 불리었던 것을 알...
-
개항기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를 들여온 영국인 선교사. 사보담(史保淡)[1874~1908]은 1874년 영국에서 출생하였다. 사보담은 리처드 헨리 사이드 보텀(Richard Henry Sidebotham)의 한국식 이름이다. 사보담은 목사로 임명된 후 미국북장로교의 해외 선교사로 파견되어 부인인 에피 앨든 브라이스(Effie Alden Bryce...
-
대한제국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동한 의병부대. 산남의진은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1843~1907]이 대한제국의 광무황제로부터 의병 봉기를 내용으로 한 밀지(密旨)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1862~1907]와 함께 경상북도 영천시를 중심으로 기병한 의병부대이다....
-
1906년 영천에서 조직되어 대구·현풍 등 영남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의병 부대. 산남 의진(山南義陣)[현풍]은 중추원 의관(議官) 정환직(鄭煥直)[1844~1907]이 의병을 일으켜 국권 회복을 도모하라는 고종의 밀명을 직접 받고 일으킨 의병 부대이다. 을사조약 이후 고종은 비밀리에 측근들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당부하는 밀조를 내렸다. 이강년(李康秊)·고광순(高光洵)·노응규...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기하(徐基夏)[?~?]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효자. 서덕희(徐德禧)의 처 경주(慶州) 최씨(崔氏)는 효성으로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시부모의 명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순종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최씨는 장한 며느리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어머니로 자식들을 올바르게 훈육하여, 아들인 서상용(徐相龍)[1858~1927]이 1894년(고종 31)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병규(徐炳奎)[?~?]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서화가이자 민족운동가. 서병오(徐丙五)[1862~1936]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대구 지역 서화계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봉기(徐鳳綺)[1847~?]는 18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한협회 대구지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대구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애국계몽운동가. 서상거(徐相巨)[1885~?]는 188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08년 교남교육회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가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회를 설립할 때 서상거는 강영주(姜永周)·김광제(金光濟)·김우근(金遇根)...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기업인이자 민족운동가. 서상돈(徐相敦)[1851~1913]은 대구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다....
-
근대 달성 출신의 관료.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운오(雲五). 아버지는 서덕희(徐德禧)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주원(徐周媛)[?~?]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대구 지역 여성들을 규합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양(景襄), 호는 임재(臨齋). 아버지는 서홍열(徐洪烈)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서채봉(徐彩鳳)[1859~1936]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흥균(徐興均)[?~?]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선교사 블레어가 살던 개항기 주택. 선교사블레어주택은 선교사(宣敎師) 블레어(H. E. Blair), 라이스(R. F. Rice)가 거주한 집으로 1910년경 건립되었다.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선교사 스윗즈가 살던 개항기 주택. 선교사스윗즈주택은 선교사(宣敎師) 스윗즈(M. M. Swizer), 핸드슨(H. H. Henderson), 아키베드 캠벨(Archibad Campbel) 등이 거주한 집이다. 1906~1910년경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건립되었다.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선교사 어드먼이 살았던 집. 선교사 어드먼 주택은 1906~1910년경 미국인 선교사 월터 C. 어드먼(W. C. Erdman)의 주택으로 미국인 선교사들이 설계하고 건립하였다. 선교사들이 거주하였으며, 1969년부터는 신명여자중학교에서 생활관, 연혁관[1972년] 등으로 사용하다 1988년에 철거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1910년경 건립된 선교사 챔니스가 살던 집. 선교사챔니스주택(宣敎師챔니스住宅)은 선교사 라이너(R. O. Reiner), 챔니스(O. V. Chamness), 소우텔(Sawtel) 등이 거주한 집이다. 1910년경 벽돌조의 한·양 절충식으로 건립되었다.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사립중학교. 성명여자중학교의 교육목표는 ‘창조성과 자주성이 풍부한 실력인을 기른다[교과 교육]’, ‘튼튼한 몸과 올바른 인성을 지닌 생활인을 기른다[생활교육]’, ‘공익과 질서를 존중하며 협동·봉사하는 사회인을 기른다[사회교육]’,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세계인을 기르고 선배들의 3·1정신을 계승하고 전시킨다[민주시민교육]’, ‘하나님을 경...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던 개항기 성당. 성모성당은 대구 최초의 종교 건물로 한옥 구조의 성당이었다. 대구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로베르(A. P. Robert)[한국명 김보록(金保祿), 1853~1922]가 건립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손명선[1871~?]은 187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08년 충주의 김학선(金學善)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송훈(宋焄)[?~?]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 쇄신파(刷新派)는 1905년 8월 대구 거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대구일본거류민회에 맞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기 위하여 만든 단체이다. 쇄신파는 대구 일본인 사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1905년 8월 대구일본거류민회의 보궐선거에 오키다[冲田棄次郞], 마치타[町田久吾], 오카모토[岡本宇一], 카와이 아사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수창학교는 설립 취지서를 통하여 신학(新學)의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구학(舊學)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였다. 수창학교는 신구학문을 융합하여 근대 교육을 실현하려 하였다. 구체적으로 인성과 덕육에 대해서는 전통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목표를 갖고 있었다....
-
개항기 대구의 상인 자본가들이 설립한 상회사. 수창사(壽昌社)는 1898년 대구에서 설립되어 1935년 무렵까지 영업 활동을 펼쳤다. 수창사는 낙동강 뱃길을 이용하여 어염미두(漁鹽米豆) 무역을 펼치던 대구의 상인 자본가층이 결성한 근대 초기 형태의 상회사(商會社)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사무소로도 기능하였다. 수창사의 사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1,000냥 이상의 투자금을 낼...
-
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대구, 부산, 마산을 방문하는 순행 중 대구를 방문한 사실.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남순(南巡)은 1909년 1월 신년 하례식 자리에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졌다. 황제의 순행은 민심 안정, 지방 순시를 위한 것이었다....
-
개항기 대구의 우현서루 내에 있던 학당. 시무학당은 우현서루(友弦書樓)를 기반으로 근대 지식 개발 증진과 시무의 지혜를 발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동에 있는 사립중학교. 신명여자중학교의 교육목표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사람 육성’, ‘올바른 인성과 태도를 지닌 도덕적인 사람 육성’, ‘강인한 체력과 심신이 조화롭게 단련된 건강한 사람 육성’, ‘쾌적하고 즐거운 교육 환경 조성’이다. 교훈은 ‘먼저 의를 구하자, 제 할 일을 다하자, 서로 섬기고 돕자’이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심정섭(沈廷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개항기 진씨 문중 재실. 야수정은 1900년경 진씨(秦氏) 문중의 재실로 건립된 건물이다....
-
1908년에 대구의 경상감영 객사에서 열리던 약령시를 남성로로 이전하여 설치 운영한 일. 대구 약령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인 17세기 중반부터 조정의 영시[대구 약령시의 약칭] 개시 통첩을 통하여 운영되었다.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 객사에서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보통 각각 10일 정도 열렸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학산공 양해일과 우산공 양헌방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개항기에 건립한 정려각. 학산공 양해일(楊海一)[1797~1873]과 우산공 양헌방(楊憲邦)[1826~1878]의 효행은 다음과 같다. 양해일은 호가 학산(鶴山), 자는 진원(進源)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올바랐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극진히 섬겼으며, 아버지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였을...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염복은(廉卜恩)[?~?]은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구애국부인회(大邱愛國婦人會)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였다. 남편은 구연승이다....
-
1870년경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에 있던 경상감영의 영사례. 1870년경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에 있던 경상감영의 영사례이며, 감영의 운영을 위하여 마련된 각 창고별 수입 및 지출 내역이 세부항목별로 기록되어 있다....
-
1871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嶺南邑誌)』「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71년(고종 8)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6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71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上送)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대구부읍지」는 대구도호...
-
1895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95년(고종 32)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2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95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上送)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읍지 대부분이 ‘의정부(議政府)’...
-
1871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1871년(고종 8)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3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71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칠곡부읍지」는 칠곡도호부에서 제작한 읍지...
-
1895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1895년(고종 32)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3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95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읍지 대부분이 ‘의정부(議政府)’라고 명...
-
1871년과 1895년에 읍지 상송령에 따라 현풍현에서 제작한 읍지와 읍사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해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邑誌)·역지(驛誌)·목장지(牧場誌)·진지(鎭誌)를 한데 모아 편찬한 경상도 도지(慶尙道道誌)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읍사례(邑事例)를 비롯하여 역(驛), 영(營), 목장(牧場), 진(鎭) 등 군사...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최씨 문중의 재실. 영모재는 경주최씨 대암공파 종중의 파조인 대암(臺巖) 최동집[1586~1661]의 부인인 공인(恭人) 인천채씨, 아들[생원 최위남(崔衛南)], 손자[선교랑(宣敎郞) 최경함(崔慶涵)]까지 3세(世)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능성구씨 문중 재실. 영모재(永慕齋)[능성구씨]는 1887년(고종 34)에 건립된 능성구씨(綾城具氏)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문중 재실이다. ‘영모재’ 편액은 당시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이호준(李鎬俊)이 명명하고 쓴 것이다. 과재(果齋) 박해규(朴海奎)는 기문에서 “부모와 선조를 사모함에 다급한 상황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
조선 후기 현풍 현감을 지낸 구문유의 시문집. 구문유(具文遊)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아(士雅), 호는 예곡(禮谷)으로 한양 출신이다. 아버지는 승정원 좌부승지 구음(具崟)이며, 어머니는 풍천 임씨(豐川任氏)로 통덕랑(通德郎) 임경달(任慶達)의 딸이다....
-
조선 후기 활동한 문신 서변의 시문집. 서변(徐忭)[1605~1656]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자경(子慶), 호는 용계(龍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응기(徐應基)이고, 할아버지는 서함(徐涵)이며, 아버지는 서사건(徐思建)이다. 1620년(광해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3년(인조 11)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서학 교수가 되었다. 그뒤 청나라에 대한 척화(斥和)를...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의료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Woodbridge O. Johnson)[1869~1951, 한국 이름은 장인차(張仁車)]은 1969년 미국 일리노이주 게일즈버그에서 태어났다. 1891년에 펜실베이니아주 의과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킹스카운티 병원과 윌키스바레 병원에서 인턴,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1897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부산을 경유하...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재실. 우록리 허씨 재실(友鹿里許氏齋室)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우록4길 12[우록리 711]에 있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 1리 마을 회관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내려와 오른쪽 신천을 가로지르는 우록 2교를 건너 윗들 방향[달성군 가창면 우록 2리 백록 마을]으로 우록길을 따라 약 580m를 가면 오른편 신천 건너편에 있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문관.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또는 경도(景陶)이다. 어릴 적 이름은 우해규(禹海圭)이다. 할아버지는 우재길(禹載吉)이고, 아버지는 우진권(禹鎭權)이다. 어머니는 하학필(夏學必)의 딸 달성하씨(達城夏氏)이다. 부인은 채석한(蔡錫翰)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
-
개항기 달성 출신의 관료이자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경도(景陶). 단양 우씨 판서공파 파조 우홍명의 손자인 우전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우진권(禹鎭權)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덕곡동에 있는 1894년 건립된 효자 우원도의 정려각. 우원도 효행각은 효자 우원도(禹元度)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 정려각이다. 우원도는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인물로 어버이가 병으로 위독할 때 변을 맛보며 간병하였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올리는 등의 효행을 실천했다. 어버이의 시묘살이를 할 때는 호랑이가 항상 그 곁에서 호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러...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는 1904년 대구 지역의 부자인 금남(錦南) 이동진(李東珍)이 개인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이다....
-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인 이원석이 대구 금호강의 운림구곡을 읊은 한시. 「운림구곡차무이도가운(雲林九曲次武夷櫂歌韻)」의 저자 이원석(李元奭)[1857~1906]의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공필(公弼)이고, 호는 운주(雲洲)이다. 모암(慕巖) 이충민(李忠民)[1588~1673]의 후손이다.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1825~191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문집으로 『운주유고(...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이창희가 세운 누각. 원장루(遠長樓)는 이창희(李昌熙)[1898~1969]가 건립하였다. 이창희의 자는 도윤(道允), 호는 확재(確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채국정(採菊亭)에서 강학한 진사 이병운(李柄運)이고, 할아버지는 일신정(日新亭)을 건립한 수헌(守軒) 이억상(李億祥)이다. 이창희는 아버지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았으며, 지재(止齋)...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누정. 원호루(遠湖樓)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동로 92[상리 632]에 있다. 달성군 현풍읍현풍 초등학교에서 우측 직선 거리로 약 200m 떨어져 있는 현풍 상리 체육 공원의 정상부에 있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유상보(柳尙輔)[?~?]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금연상채회(禁烟償債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윤영섭(尹瑛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대구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 대구 지역은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중심 도시여서 대구를 기반으로 의병 부대가 만들어지거나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구 출신 의병들은 주로 다른 지방의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항일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
한말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달성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 한말의 의병(義兵)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맞아 한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봉기한 민병(民兵)이었다. 민병이라고 해도 관군을 지원하는 등의 단순한 민병이나 관군의 위치를 초월한 민족의 군대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관군과 함께 또는 관군의 보조적 위치에서 작전을 수행한 조선 시대의 의병과 다른 점이...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영(李根泳)[?~?]은 1908년 교남교육회(嶠南敎育學會)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는 학교 설립과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대구와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방조직인 지회를 설립하고 권유위원을 파견...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중(李根重)[?~?]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에 있는 개항기에 다시 세운 정자. 이노정(二老亭)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길 19-17[내리 443]에 있다. 달성군 구지면 대구 국가 산업 단지의 서쪽 끝 낙동강 변의 속칭 ‘성담’이라 불리는 산성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
근대 개항기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에서 살았던 유학자 조긍섭이 이동진을 입전하여 지은 전 문학. 「이동진 전(李東珍 傳)」의 저자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이다. 아버지는 조병의(曺柄義)이다.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생하였지만 오랜 기간 대구의 비슬산에서 거처하였다. 조긍섭은 일정한 스승은 없었지만 타고난 성품...
-
개항기 대구군수를 역임한 문관. 이범선(李範善)[1835~1905]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원(穉元), 호는 수서(水西)이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이귀하(李龜夏)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병규(李柄逵)[1867~192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덕점(德漸), 호는 희암(希菴)이다. 아버지는 이만상(李萬祥)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공도공(恭度公) 이문화(李文和)의 후손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병두(李柄斗)[?~?]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주택. 이인술 주택은 1905년 지강(芝崗) 이승연(李承淵)[1861~1933]이 건립하였다. 이인술 주택은 정침과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집 외곽에는 담을 둘러 영역을 구분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종희(李宗熙)[?~?]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중관(李重寬)[?~?]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이춘화(李春花)[1857-?]는 185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동부 지방에서 활동하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가담하여 일제 침략에 맞서 싸웠다....
-
개항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이헌영(李𨯶榮)[1837~190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도(景度), 호는 경와(敬窩) 또는 동련(東蓮)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명희(李命喜)이고, 할아버지는 이서헌(李書憲)이다. 아버지는 이정태(李鼎台)이다. 어머니는 조재희(趙在禧)의 딸이다.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이현주(李玄澍)[?~?]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고,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효순(李孝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광문사의 자치 조직으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 대구광문사가 주도하여 결성한 인민대의소(人民代議所)는 민지개발(民智開發)과 민권을 부식(扶植)하기 위한 추진 기관이었다. 또한 대구광문사가 지향하는 바와 동일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치 조직이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개항기의 서원. 인흥서원(仁興書院)은 추황(秋篁)[1198~1259], 추적(秋適)[1246~?], 추유(秋濡)[1345~1404], 추수경(秋水鏡)[1530~1660]을 배향한 서원이다. 추황의 본관은 추계(秋溪), 초명은 추영수(秋永壽), 호는 회암(悔庵),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추계 추씨(秋溪秋氏) 시조인 추엽(秋輅)의 아들로 120...
-
개항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에 있었던 대구 최초의 근대식 은행 1878년 6월 일본제일은행이 부산에 설립한 제일은행 부산지점은 우리나라 근대식 금융기관의 효시로 볼 수 있다. 1905년 1월 대한제국의 국고금 취급 은행이 된 일본제일은행은 제일은행권을 발행하면서 대한제국의 금융권을 장악하였다. 일본제일은행은 원산[1880], 인천[1883], 경성[1888], 목포[189...
-
개항기 대구에 설립된 일본인들의 경제 단체. 일본인상업회의소(日本人商業會議所)는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의 상공인들이 상공업 발전과 친목 도모를 위하여 1906년 설립한 경제 이익단체였다. 일본인상업회의소는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 때까지 활동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개항기 유학자 이억상이 건립한 정자. 일신정(日新亭)은 수헌(守軒) 이억상(李億祥)[1835~1905]이 만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일신(日新)’은 『대학(大學)』에 나오는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에서 이름 붙인 것이다. 이억상은 어릴 때 종숙(從叔) 만은공(晩隱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하였다.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임한조(林漢祚)[1881~?]는 188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신돌석(申乭石) 의병 부대에 투신하여 영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경상감영 객사 철거에 반대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직. 자위대(自衛隊)는 1908년 말 경상북도 관찰부가 대구공소원[기관]을 건축하기 위하여 경상감영 객사를 철거하겠다고 하고, 대구일본거류민단 또한 객사를 철거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며 경상감영 객사를 지킬 목적으로 1909년 1월 대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이자 관료. 장규원(張圭遠)[?~?]은 근대 사립학교인 달성학교(達城學校)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부교장을 맡아 대구 지역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정경주(鄭瓊周)[1866~1945]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는 개항기 정은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비문에 의하면 정은덕(鄭殷德)[1805~?]은 매번 흉년이 들 때면 곡식을 내어 사람들을 구제해 주었고, 아들 정노윤(鄭魯潤), 손자 정기근(鄭冀根)도 같은 일을 행하였다고 한다. 이에 1879년(고종 16) 조암면민이 정은덕 3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은덕 유혜 불망비(鄭殷德遺惠不忘碑)를...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정해진(鄭海鎭)[?~?]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성옥(成玉), 호는 필암(必庵)이다....
-
대구에서 활동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에드워드 아담스(James Edward Adams)[1867~1929]는 1867년 5월 2일 미국 캔사스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대구선교부에 파송되어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는 등 대구 지역의 교육 및 의료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국 이름은 안의와이다....
-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우성규가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첨백당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또는 경도(景陶)이다. 우성규는 달성(達城)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지금 서울특별시]에 올라가 명류(名流)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고종 때 북부령·사직령, 임천·단양의 군수 등을 역임하...
-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조강하(趙康夏)[1841~1892]는 1883년(고종 20)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에 있던 조선은행의 지역 지점. 조선은행 대구지점(朝鮮銀行大邱支店)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중앙은행을 담당하였던 조선은행이 대구에 설립한 지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대한제국 시기 운영되었던 한국은행을 개칭하여 조선은행을 설립하였다. 불안정한 조선 경제가 일본 본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선 은행권을 따로 발행하면서도, 그 가치를 일본 은행권과 동일하...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조성호(趙性浩)[1838~1906]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선양(善養), 호는 만포(晩圃)이다. 아버지는 조일호(趙馹祜)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괴산군수 조형도(趙亨道)의 9대손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던 선교사 존슨이 살았던 집. 존슨(Woodbridge O. Johnson) 주택은 1898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서양 의술로 선교활동을 한 미국 북장로교 의사 존슨의 주택이다. 존슨 주택에 사용한 목재는 대구로부터 25마일[약 40㎞] 떨어진 지방에서 벌목하여 낙동강의 수운으로 대구 근교까지 운반한 다음 인부들이 공사장까지 운반하였고, 문은 미국 시카고에...
-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곽간의 시문집. 곽간(郭趕)[1529~1593]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이다. 아버지는 곽지견(郭之堅)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수돈(金守敦)의 딸 상산 김씨(商山金氏)이다. 1546년(명종 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후 1550년(명종 5) 형조 좌랑에 임명되었다. 1552년(명종 7) 대동찰방 겸 수...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채두석(蔡斗錫)은 유학(幼學)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재실. 첨모재(瞻慕齋)[문산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1길 14[문산리 270]에 있다. 달성군다사읍사무소 앞 달구벌대로[국도 30호선]에서 성주 방향으로 약 3㎞ 직진하다 문양역 약 300m 전에서 낙동강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약 340m 들어가면 오른쪽에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뒷골 마을이 있다. 뒷골 마을 서쪽 끝자락...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송촌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재실. 첨모재(瞻慕齋)[송촌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송촌길 261-2[송촌리 311]에 있다. 달성군 옥포 보건 지소 건너편 옥포 초등학교 뒤쪽으로 난 비슬로 446길을 따라 직선 거리로 약 3㎞ 들어가면 달성군 옥포읍 송촌리 솔비 마을이 있다. 첨모재는 솔비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1896년 건립된 단양우씨 예안공파 문중 재실. 첨백당은 평광동 단양우씨 문중의 재실이다. 첨백당은 조선 후기의 선비 용강(龍岡) 우명식(佑命植)의 절의와 그의 증손자인 우효중(禹孝重)의 효행을 기리고 추모하는 재실이다. 첨백당은 선조인 우명식의 묘소가 있는 ‘백밭골[백전곡(栢田谷)]을 우러러보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1929년 최종응이 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의 중건 상량문. 「청호서당 상량문(靑湖書堂上梁文)」을 쓴 최종응(崔鍾應)[1871~1944]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성문(聲聞)이고, 호는 금전(琴田)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가명으로 최근응(崔謹應)을 사용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 중건에 대한 유도승의 기문. 「청호서당 중건기2(靑湖書堂 重建記2)」의 배경이 되는 청호서원은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제향하고 있다. 손처눌 생전에 청호서당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1694년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여 손처눌의 6대조인...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당에 대하여 개항기 애국지사 이만도가 지은 기문. 「청호서당기(靑湖書堂記)」를 쓴 이만도(李晩燾)[1842~1910]는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는 관필(觀必)이고, 호는 향산(響山)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병탄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단식을 결행한 끝에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 최극창(崔克昌)[?~?]은 근대 사립학교인 달성학교(達城學校)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대구 지역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대림(崔大林)[?~?]은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에서 활동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출신의 자본가. 최만달(崔萬達)[?~?]은 대구사범학교와 대구농공은행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만순(崔萬淳)으로도 알려졌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시교(崔時敎)는 1908년 대구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에 가입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할동한 민족운동가. 최응백(崔應白)[?~?]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최종륜(崔鍾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최현달(崔鉉達)[1867~1942]은 186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일화(一和)이다. 아들은 최해종(崔海鐘)이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재실. 추원재(追遠齋)는 1876년(고종 13) 서흥(瑞興) 김수침(金壽忱)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과학북로25길 8[화산리 421]에 있다. 달성군구지면사무소 앞 창리중앙2길을 따라 약 1.2㎞ 직진하여 가다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 중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편 산기슭에 위치한 나미실 마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 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추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으로 민부 상서(民部尙書), 예문관 제학(提學)을 지냈고,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였다고 하는 추계 추씨(秋溪秋氏)의 시조 추적(秋適)의 신도비이다. 추적은 생몰년은 미상이며, 호는 노당(露堂)이다. 충렬왕 초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 직사...
-
1899년 간행된 경상북도 칠곡군의 읍지. 『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1899년(광무 3) 1책으로 간행된 칠곡군의 읍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선생안에는 1898년에 이종표(李鍾杓)가 도임한 기록은 있지만 체임된 내용은 없기 때문에 이종표 재임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곽황의 시문집. 곽황(郭趪)[1530~1569]의 본관은 포산(苞山), 자는 경정(景靜), 호는 탁청헌(濯淸軒)이다. 곽황은 1556년(명종 11) 문과 별시에서 을과 1인으로 등제하여 예조 좌랑을 거쳐 예안현(禮安縣)에 파견되었다가 함양 군수가 되었다. 예안의 읍지인 『선성지(宣城誌)』에 따르면 1563년(명종 18) 토지도 척박하고 빈곤한 선성재(...
-
근대시기 학자인 허훈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속암인 금당암에 있는 사리탑 비명. 허훈(許薰)[1836~1907]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이다.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황덕길(黃德吉)로 이어진 성호학파의 실학을 이은 허전(許傳)의 집지문인(執贄門人)이다. 이이(李珥)의 성리설이 이황(李滉)의 견해와 다른 문제들을 비판하였고,...
-
1907년 대구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 109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이외...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하구락(夏龜洛)[1862~1919]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낙원(洛元), 호는 경암(景菴)이다. 아버지는 하석명(夏錫明)이다. 부인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 하운서(夏雲瑞)의 후손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하동규(夏東奎)[1873~1943]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취오(聚五), 호는 금은(琴隱)이다. 할아버지는 하석윤(河錫胤)이고, 아버지는 하상락(河祥洛), 어머니는 서재곤(徐在坤)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형은 하동기(夏東箕)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하동기(夏東箕)[1870~1933]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성범(聖範), 호는 오재(悟齋) 또는 심강(心岡)이다. 할아버지는 하석윤(河錫胤)이고, 아버지는 하상락(河祥洛), 어머니는 서재곤(徐在坤)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동생은 하동규(夏東奎)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양달화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건물. 학산재(鶴山齋)는 지촌(池村)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정자이다. 양달화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문장과 덕행으로 향리에서 명망이 높았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허영(許泳)[1859~1926]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택여(澤汝), 호는 후암(後巖)이다. 아버지는 허순(許銁)이고, 어머니는 상주주씨(尙州周氏)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허철(許哲)[1860~1935]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순필(舜弼), 호는 초려(草廬)이다. 아버지는 허원(許沅)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허호(許浩)[1824~1892]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양여(養汝), 호는 예산(禮山)이다. 아버지는 허윤(許鈗)이다....
-
1903년 간행된 경상도 현풍현의 읍지. 『현풍읍지(玄風邑誌)』는 1903년(광무 7) 1책으로 간행된 현풍현의 읍지이며,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현풍읍지』는 책의 구성과 내용으로 보아 1786년(정조 10)경 편찬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현풍현읍지(玄風縣邑誌)』를 필사하여 1903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포교당. 유가사(瑜伽寺)와 도성암(道成庵)의 증계지 포교당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
1907년 경상북도 현풍군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국채 보상 운동 단체. 1907년 1월 대구의 대동 광문회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발기된 이래 당시 경상북도 현풍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도 국채 보상 운동을 위해 단연보상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
1899년 간행된 경상북도 현풍군의 읍지. 『현풍군읍지(玄風郡邑誌)』는 1899년(광무 3) 1책으로 간행된 현풍군의 읍지이며,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현풍군읍지』는 책 크기, 종이 재질, 판식 등 형태 사항이 1899년에 편찬된 다른 읍지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1899년 읍지상송령에 따라 제작된 읍지로 보인다....
-
1899년 경상북도 현풍군에서 편찬한 읍지.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현풍군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조선 정부의 마지막 전국적 읍지 편찬 사업이기도 하다. 전국의 행정 구역이 개편된 이후이기 때문에 각 도의 명칭이 남도와 북도로 표기되고, 각 읍의 주부군현(州府郡縣) 체제도 변경되어 표제만으로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현풍군읍지』[1899년]는 30일 이내에 작...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중등학교. 협성학교는 대구에서 관계와 지역사회가 연대하여 개교한 근대 중등학교이다. 협성학교의 교육목표는 1906년 3월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내린 “오늘날의 급선무는 오직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양성하는 길만이 밭을 일구고 재물을 불리는 도구가 될 것이다”라는 교육 진흥 조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1907년 『황성신문』은 협성학교의 설립 취지에...
-
대구광역시 북구에서 수집된 우씨 부인 자매가 지은 규방가사. 「형주씨 수연 경축가」는 권영철이 대구광역시 북구[무태조야동]에서 수집한 규방가사이다. 병오년 8월 29일 우씨(禹氏) 부인 자매가 형님의 회갑연을 맞아 형님에 대한 찬송과 만수무강을 비는 내용이다. 4음보 1행 기준으로 모두 134행이며, 대부분 4음보이나 일부 6음보도 있다. 필사자는 구씨(具氏) 부인이다. 가사 끝에...
-
개항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애국 계몽 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량(士良), 호는 자은(紫隱). 홍만조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성균 진사(成均進士) 홍가모(洪可謨)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사립초등학교. 효성초등학교(曉星初等學校)의 교육목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진실된 어린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세계적인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도전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미래를 위하여 재능과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적인 어린이,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교류하는 문화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교훈은 ‘믿음, 사랑, 봉사’이다....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도신여의 시문집. 도신여(都愼與)[1605~1675]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이다. 대구 하빈현 도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여흥 이씨(驪興李氏)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도성유(都聖兪)의 양자가 되었다. 정구(鄭逑), 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633년(...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된 개항기 복식 유물. 흥선대원군 기린흉배(興宣大院君麒麟胸背)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관복에 달았던 흉배이다. 아들인 고종(高宗)[1852~1919]이 즉위한 1863년 이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979년 1월 23일 국가민속문화재 제65호에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흥화학교는 1899년 12월에 흥화학교 지교로 설립되었다. 흥화학교 지교는 1909년 9월 6일 흥화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0년 10월까지는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