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원(西原). 예조 참판을 지낸 곽열(郭說)의 9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곽희태(郭希泰)의 8세손이다. 곽치능(郭致能)[?~?]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정성껏 좋은 음식으로 공양하였고, 겨울에는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만들어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눈병을 앓아 바깥출입이 어려워지...
-
고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교육. 천안 지역에 고려 시대 이전에 존재하였던 교육 기관은 현재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천안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교육 기관이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시킨 기록은 조선 시대부터 남아 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교육 기관으로는 향교, 서원, 서당이 있다. 성균관의 규모를 모방하여 설치한 향교가 지방 교육의 대표적 역할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권학경(權學經)[?~?]은 타고난 성품이 몹시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죽자 초상에서 장례까지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밤에는 아버지의 관을 붙잡고 슬퍼하고 낮에는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초상을 치르고 삼 년 동안 시묘를 살며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 제사를 올리고 추모하였다. 어머니를 섬기는 데 있어...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중정(重精)이다. 이조 참판을 지낸 김자(金赭)의 8세 손이며, 현감을 지낸 김덕윤(金德潤)의 고손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승지를 지낸 김응상(金應祥), 할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김정립(金挺立)이다. 아버지는 감역을 지낸 김석(金晳)이다. 김남수(金南粹)[?~?]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병부판서 의성군 김광부(金光富)의 11세 손이고, 이조 참의를 지낸 김로(金路)의 10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김신정(金愼貞)의 5세 손이다. 김득휘(金得輝)[?~?]는 천성이 타고난 효자로서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와 조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등에 큰 종기를 앓아 증세가 심해지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 병이 낫게 했고...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언양(彦陽)이다. 충신 김응상(金應祥)의 6세 손이며 목사 김동연(金東淵)의 아우이다. 김의연(金義淵)[?~?]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바르고 지극한 효자였다. 네다섯 살 때에 어머니가 병이 들어 “내가 죽으면 누구에게 의지하겠느냐?”라고 걱정하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제가 어찌 혼자 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를 따라 죽겠습니다.”라고...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김주수(金柱秀)[?~?]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아버지가 늙고 병세가 깊어져 소의 생간을 먹고 싶어 하자, 나무를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살림에도 이웃집의 소를 잡아 아버지께 생간을 드려 병을 고쳤다. 또, 아버지가 위장병을 앓아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고 병세가 깊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병조 판서를 지낸 김광부(金光富)의 10세 손이고, 이조 참의를 지낸 김로(金路)의 9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김신정(金愼貞)의 4세 손이다. 김항(金恒)[?~?]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아홉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통곡하고 슬퍼하였다. 삼 년간 슬퍼하며 죽으로 연명하였다. 할머니가 가...
-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교육 지원 단체. 향토애 진작과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교육 지원 단체이다. 1990년 서산 지역에서 창립된 서산 장학 재단의 천안 지역 조직으로 2006년 김평산을 지부장으로 창립되었다. 주요 사업에는 장학 사업, 교육 사업, 문화 사업, 교육 사업 등이 있다. 2006년 9월 30...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대제학을 지낸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의 후손이다. 소휘만(蘇輝萬)[?~?]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성이 과묵하고 순수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년을 죽만 먹으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사 년 동안 광기가 심하여 사람들이 감히 근접하지 못하고 자주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으나, 소휘만은 아버지의 목숨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이다. 송영흥(宋永興)[?~?]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말과 행동이 신중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봉양하였는데, 자신은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맛좋은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구하기 어려운 음식도 반드시 구하여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장성하여 관직에 나아가서는 아침저녁으로 안...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신필권(申必權)[?~?]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 장성한 다음에는 옷이 춥고 따뜻한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살피며 부모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렸다. 아버지가 투전놀이를 좋아하여 가세가 기울었으나 매일 한두 냥씩을 마련하여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사서(司書)를 지낸 한죽공(寒竹公) 심지청(沈之淸)의 5세 손이다. 심지영(沈祉永)[?~?]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예와 정성을 다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극진하였다. 여덟 살에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이십여 년을 한결같이 약을 지어 올리며 정성을 다하였다. 본가가 근...
-
전통 시대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한 천안 지역의 부녀자. 열녀(烈女)란 어려움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천안 지역의 열녀에 관한 기록은 『대록지(大麓誌)』, 『직산현지(稷山縣誌)』, 『영성지(寧城誌)』, 『대록삼강실록(大麓三綱實錄)』, 『여지도서(輿地圖...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무송(茂松). 고려의 명신 유금필(庾黔弼)의 후손이다, 제학을 지낸 유순도(庾順道)의 13세 손이며, 부제학을 지낸 유득시(庾得時)의 9세 손이다. 할아버지는 효자 유제민(庾濟民)이다. 유덕태(庾德泰)[?~?]는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정성으로 효도를 다하였고, 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판서 유승계(兪承桂)의 13세 손이다. 유붕기(兪鵬基)는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했고, 성년이 되자 어려서 상복을 입지 못한 것을 한평생 서러워하다 아버지의 회갑이 되던 해에 상복을 갖추어 입고 예를 갖추어 삼년상을 치렀다. 또,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여 모셨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음식을 먹지 못하자...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오기당(悟己堂)이다. 우의정을 지낸 유량(柳亮)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유현수(柳顯秀)의 맏아들이다. 유주석(柳疇錫)[?~?]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우애가 깊고 품성이 후덕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문안을 살피고 정성 어린 음식을 거른 적이 없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의복을 봉양하...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반계(磻溪)이다. 취부(醉夫) 윤결(尹潔)의 종증손자이다. 윤취갑(尹就甲)[1625~?]은 목천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부모의 음식과 의복을 갖추는 데 정성을 다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아우 윤현갑과 함께 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삼년상을 치를 때는...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지돈녕(知敦寧) 이심행(李審行)의 후손이다. 이규운(李奎運)[?~?]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열 살 때 중국 진(晉)나라 이밀(李密)이라는 사람이 관직을 받고도 할머니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퇴한 「진정표(陳精表)」를 읽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독서와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중촌(中村)이다. 이효범(李孝範)의 손자이다. 이기준(李頎俊)은 어려서부터 예의를 중시하고 효성을 다하여 부모의 뜻을 받들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대변을 맛보고 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초상에서 장례까지 한결 같이 예법에 따랐다. 3년 동안 움막에서 시묘 살이를 하며...
-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수(文叟), 호는 서곡(西谷)이다. 세조(世組)의 아들 덕원군(德源君) 이서(李曙)의 증손자이다. 이란수(李鸞壽)[?~?]는 10살에 아버지가 죽자 어린나이임에도 초상에서 장례까지 예법을 다하여 몸소 주관하였다. 어머니가 병들자 두 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 드리고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어 약으로 쓰는 등 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자윤(子尹), 호는 매계(梅溪)이다. 효자 이종주(李宗周)의 증손자이다. 이상익(李相益)[?~?]은 천성이 온화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병든 아버지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자 이상익은 보(洑)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날마다 붕어와 검은 모래무지가 물 밖으로 뛰쳐나왔으므로 사람들이 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의 9세 손이며, 구천군(龜川君) 이수(李睟)의 7세 손이다. 이재겸(李載謙)[?~?]은 어려서부터 예의 바르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내 또한 행실이 바르고 효성스러웠다.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여러 해 누워 계셨는데, 이재겸과 그의 아내는 밤낮으로 곁에서 보살피며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도 잠...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대숙(大叔)이다. 학성군(鶴城君) 이철(李哲)의 후손이며,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낸 이의(李誼)의 12세손이다. 이종은(李宗殷)[?~?]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모셨다. 워낙 집이 가난하여 자신은 새 옷 한 번 입어 보지 못했지만 음...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선(仲宣)이다. 이지봉(李至鳳)의 증손자이다. 이찬(李纘)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남달리 뛰어나 사람들에게 효자동(孝子童)으로 불렸다. 형이 따로 살며 부모를 모셨는데, 이찬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왕래하며 어머니의 안부를 살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십 리나 멀리 있는 묘에 날마다 성묘를 가서 아침부터 해가 저물...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호군을 지낸 이몽열(李夢說)의 아들들이며, 목은 이색(李穡)의 9세 손이다. 이탁(李倬)·이일(李佾)·이칙(李侙)·이옥(李亻玉) 형제는 북면 회촌에서 거주하였다. 병자호란 때 이들 4형제는 80세가 넘은 부모를 등에 업고 피난하다가 청주의 쌍천동 부근에서 청나라 군사와 마주쳤다. 부모를 외진 곳에 숨겨 놓고 형제들이...
-
세계에서 유명한 대학 도시로는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 미국의 보스턴, 오스트리아의 멜버른, 오스트리아의 빈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법정동에 가장 많은 대학이 자리한 곳은 충청남도 천안시의 안서동이다. 안서동에는 백석 대학교, 백석 문화 대학교, 상명 대학교, 호서 대학교가 있고, 인근 신부동에는 단국 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예로부터 삼남 지방에서 서울로 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원성동에 있는 교원 단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민주화 실현 및 민주 교육 발전에 기여하며 교육 노동자로서 기본 권익을 옹호하고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참교육 운동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립했다. 1980년대 후반 사회 각 부문의 민주화 분위기와 더불어 교육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충남 교사 협의회가 1987년 9월 창립되었다. 1...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병조 판서를 지낸 정이한(鄭而漢)의 후손이다. 정동철(鄭東哲)[?~?]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상태를 살피고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마련하는 등 극진히 봉양하였다. 또한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함에 있어서도 항상 예로써 행하였다. 어느 날 부모의 약을 지어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과...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정연(鄭淵)[?~?]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럽고 양순하였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고, 밤에는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발원하였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 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하루는 나병 환자가 여막에서 같이 자기를 원하였으나 정연은...
-
현대 천안 지역의 효자. 정종덕(鄭種德)은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하였다. 가난한 살림에도 형제간에 우애가 깊고 정성을 다해 홀어머니를 모셨다. 정종덕의 바른 성품과 효성에 대한 이웃의 칭찬이 많았다. 외가의 도움으로 농경지를 소작하게 되어 굶주림을 면하였다. 20세 되던 해에 결혼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노력하여 논밭을 사들이고...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한림(翰林)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며, 사마소(司馬所)를 창건한 주여서(周汝瑹)의 7세 손이다. 주도복(周道復)[?~?]의 집안은 대대로 충효를 이어온 집안이다. 천성이 예의범절을 중시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여러 해를 병석에 있자 허리띠를 풀지 않은 채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몸소...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예조 판서를 지낸 주원의(周原義)의 15대손이며, 주부(洲簿)를 지낸 주희(周熙)의 11대손이다. 주석영(周錫永)[?~?]은 천성이 효성스럽고 예의범절이 뛰어났다.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 조금도 그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고, 늘 온화한 얼굴로 대하였다. 아버지의 체증이 심해 위중할 때 의원이 말하기를 “정화수를 많이 마...
-
충청남도 천안 지역 교사의 교권 향상과 교직의 전문성 확립, 교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교원 단체. 회원 상호간의 강한 단결력을 통하여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교권의 지위 확대, 교직원의 전문성을 확립으로써 청소년의 복지 증진과 민주교육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47년 2월 25일에 대전 삼성 초등학교에서 충청남도 교육회가 결성되었다. 1990년 1월...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에 있는 교육 지원 단체. 범시민적 장학 사업을 통해 천안시를 이끌어갈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 교육, 과학, 체육, 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지원함으로써 교육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품격 있는 교육 도시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천안 사랑 장학 재단은 2012년 1월 17일 설립되었다. 2012년 1월 17일...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에 있는 교육 경력자 중심의 교원 단체. 배우는 즐거움, 가르치는 즐거움, 봉사하는 즐거움의 삼락을 목적으로 교육에 종사한 경륜을 살려 사회에 봉사하고자 1969년에 설립된 한국 교육 삼락회 총연합회의 지역 조직으로 1970년 천안시 교육 삼락회를 창립하였다. 퇴직 교원 평생 교육 단체로서 청소년 선도, 학부모 교육, 학교 교육 지원 등 평생...
-
전통 시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천안 출신의 인물. 충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절을 다한 신하로서, 성신(聖臣)·양신(良臣)·충신(忠臣)·지신(智臣)·정신(貞臣)·직신(直臣) 등 육정신(六正臣) 중의 하나이다. 천안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이 많이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천안 지역의 효자에 관한 기록은...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취지(聚之), 호는 성와(省窩)이다. 고려 때의 충신인 몽계(夢溪) 한철충(韓哲冲)의 후손이며, 참의(參議)를 지낸 한덕해(韓德海)의 6세 손이다. 한동오(韓東五)[?~?]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유하며 부지런하였으며, 동기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를 지극히 중시하였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린 몸이라...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한성기(韓聖基)[?~?]는 타고난 천성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밤낮으로 문안을 드리며 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했다. 아버지가 병들어 자리에 눕자 직접 미음을 끓이고 탕약은 반드시 먼저 맛을 보았고, 대변을 맛봐아 병세를 살폈다. 또한 자신이 아버지의 병환을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늘...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구보(逑甫), 호는 반곡(磻谷)이다. 판서를 지낸 한철충(韓哲冲)의 10세 손이며, 감역(監役)을 지낸 한응남(韓應南)의 고손자이다. 한세기(韓世基)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타고난 품성이 후덕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바쳤고, 어머니가 병들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다. 어머니의...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국로(國老), 호는 수은(睡隱)이다. 고려 때의 충신인 몽계(夢溪) 한철충(韓哲冲)의 후손이며, 효자 한동오(韓東五)의 손자이다. 한의교(韓義敎)[?~?]는 천성이 예의바르고 온화하며 부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병환으로 자리에 앓아눕자 아무리 춥고 무더운 날이라도 허리띠를 풀지 않았다...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허상(許商)과 허주(許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허상의 나이 열 살에 아버지가 죽자 형제는 슬퍼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고, 상례를 성인과 같이 하여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 또한 지극하여 어머니가 등창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자 마을의 부인들에게 젖을 얻어다 드리고 밤낮으로...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경일(景逸)이다. 할아버지는 황우참(黃友參), 아버지는 황윤림(黃潤淋)이다. 효자 황종해(黃宗海)가 아들이다. 황덕휴(黃德休)[?~?]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가 죽자 몹시 슬퍼하며 동생과 함께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임진왜란과 흉년으로 인해 어려운 상...
-
전통 시대 천안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인물.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삼국 시대부터 효 사상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오늘날의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의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에서 『효경(孝經)』은 중요한 교수 과목이었다. 통일 신라 시대 원성왕 때 실시한 독서삼품과에서도 『효경』은 시험의 필수 과목이었다. 고려 시대 국립대학인 국자감(國子監)에서도...